소양댐 자전거도로
춘천 소양 2교부터 우두산까지 자전거도로, 산책로,
친수 및 경관 시설인 노을마당, 청류마당이 완공됐다고 해서 걸어 보았습니다
0 코스 : 소양2교~소양1교~우두산~우두벌~육림공원~소양2교
0 시간 : 4시간
춘천의 유래
용화산의 줄기가 뻗어 내리다가 우두벌에 이르러 멈추었는데 그 말단에 해당되는 곳이 우두산이다.
우두산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우두벌, 동쪽에는 샘밭이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 모진강(북한강)과 동쪽으로는 소양강이 흘러 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춘천(春川)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 태종13년인 1413년이다.
1413년부터 지금까지 춘천으로 불리는 것이고 그 이전에는 시대에 따라
춘주(春州),안양(安陽),수춘(壽春),봉산(鳳山),광해(光海),삭주(朔州),오근내(烏根乃),
수차약(首次若),수약(首若),우두(牛頭),우수(牛首)등으로 불리었다.
이들 명칭중 제일 먼저 사용된 것은 우두/우수였다.
즉,춘천의 원래 이름은 "우두/우수"인 것이다.
그런데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의 기록에서 牛頭와 牛首가 혼용된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은 실제로 사용한 이름은 이러한 한자식 명칭이 아니라 "소머리"일 듯하다.
최초의 춘천은 우두산을 중심으로 한 우두동이 중심지였다.
우두산은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는 성역(聖域)이었다.
(우두동을 신동, 사농동 등과 통합하여 신사우동으로 고친 것은
공무원들의 역사의식 부족 때문이다. 춘천 최초의 명칭을 없애 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우두동을 소머리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이곳에 소의 머리처럼 생긴
우두산(牛頭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산은 하늘에서 내려온 소가 소양강 물을 먹는 형상이다.
우두산
해발고도 133미터의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우두산(牛頭山)은
넓은 우두벌 평지에 솟아있는 일종의 구릉이다.
이산은 소의 머리처럼 생겨서 하늘에서 내려온 천우(天牛, 하늘 소)가 앉아 있는 형국이니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이러니 ‘하늘소’가 한 때 춘천의 상징동물이 되기도 했다.
소양강과 모진강이 용과 범의 모양으로 펼쳐졌다가 멀리 가서 합쳐지니
풍수가들은 천리를 달리는 용이 앉은 명당이라 했다.
이를 알고 투장을 많이 해서 지역주민들이 머릿골을 앓았단다.
정상에는 1955년에 세운 충렬탑과 1938년에 옮겨 놓은 조양루가 있다.
과거에 우두사란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흔적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솟을뫼
이 우두산 꼭대기에 '솟을뫼'(저절로 솟아 오르는 묘)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 산 정상 무덤 옆에 소를 매어 두면, 소가 묘를 밟아 푹푹 들어가거나 망가졌다.
하지만 하루 밤만 자고나면 다시 솟아올라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끔하게 제 모양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무덤을 ‘솟을 모이’, ‘솟을 뫼’, ‘솟아나는 무덤’, 혹은 ‘용묘(聳墓)라 했단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들이 없는 여인이 이 무덤에 와서 정성껏 벌초를 하고 빌면
틀림없이 득남한다고 알려져, 부인들이 밤새 벌초를 하고 빌고 간다는 전설이 있다.
벌초를 할 때는 아무도 몰라야 한다는 금기도 있다.
조양루
조선 인조 24년(1646년) 춘천부사 엄황이 건립했던 문소각의 문루였다.
그 후 문소각은 1916년 화재로 불타버렸으나
조양루는 순종 2년(1908년)에 지금의 장소인 우두산으로 이전되어 화재를 피할 수 있었다.
문루는 성문 또는 지방관청의 외부 울타리에 출입자를 통제하고자 세운 건물이다.
팔작지붕 익공계 양식을 가진 겹처마 중층건물로, 아래 칸은 출입용이며 위층은 감시와 통제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2012년 도청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이전하기 전
도청으로 이전한 모습
충렬탑
춘천 우두산 충열탑은 한국전쟁 당시 겨레의 생존권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순국하신
강원도출신 전몰장병과 순국경찰관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추모하고자
1955년 7월에 육군 3군단 제29사단에서 건립한 현충시설물이다.
충열탑이 자리한 우두산 지역은 한국전쟁 개전 초기(1950.6. 25~ 6. 28)
국군 제2군단의 제6사단 장병들이 춘천시민들과 하나가 되어
인해전술로 공격을 자행해 온 북괴군 제2군단 예하 제2사단과 제7사단의 주력군을 섬멸함으로서
전쟁 초기 유일하게 승전보를 올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당시 북괴군은 춘천 전투에서 대패함으로서 속전속결의 남침계획에 타격을 주었다.
이로인해 북괴군 제2군단장이 해임되는 등 한국전쟁사에 가장 빛나는
전승의 기록을 남겼던 전적지이다.
특히 이 전투는 춘천시민, 학도호국단 학생, 여성근로자(제사공장)들이 탄약을 운반하고 전
투에 참가하여 빛나는 승리를 가져옴으로서, 민, 관 총력전의 귀감이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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