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1,240m)~운문산(1,188m)

0 위치 : 경남 밀양, 울산 울주, 경북 청도

0 코스 : 석남터널→1168봉→가지산→아랫재→운문산→상운암→석골사→석골교

0 일시 : 2009. 5. 9(일)

0 시간 : 8시간 /맑음


운문산(1,188m)

구름의 문, 운문산. 이름대로 구름이 많은 산이다.

청도쪽에서는 운문산의 산세가 험준하다고 하여 호거산이라 불러

지금도 운문사 입구에는 호거산 운문사라는 화강암 표석이 있다.

한편 청도 운문면 쪽에서는 그 모습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이 산은

밀양 산내면에서는 가리는 것 하나없이 지척에 보인다.

이 곳 사람들은 산의 모양이 마치 한덩이의 큰 바위처럼 생겼다고 하여

‘한바위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산기슭에 석골사가 있고 멀리서 보면 ‘만산의 기암이 개골’이라 하여 석골산으로도 부른다.

또「미리벌의 얼」에는 '산이 높아 맺혔던 꽃봉오리가

피기전에 시들고 만다해서 화망산이라고 한다.

혹은 석골사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흡사 꽃을 감싸고 있는 꽃잎 같은 형국이라 함화산이라 한다

또 다른 이름인 일출봉,석동산으로도 불린다

운문산은 전체적으로 듬직하고 중후한 모습이다.

산세는 정상 남쪽(밀양쪽)으로 급하고 능선이 짧은 반면

북쪽(청도쪽)으로는 능선이 길고 완만하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청도의 운문산은 연해진 봉우리와 겹쳐진 묏뿌리에 골이 깊숙하다.

승가에서는 천 명의 성인이 세상에 나올 곳이다.

또 병란을 피할 수 있는 복지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넓고 험한 산세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이 의병들의 본거지가 되었는가하면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빨치산들의 은거지로도 이용되었다.

이곳에도 두 개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동쪽으로 지나온 가지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오른편으로 신불산군과 재약산군이 아득히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 돌아서면 억산 능선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억산 뒷편으로 대구 팔공산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확인하지 못했다

/←남명리5.5km, →석골사4.5km, →억산4.1km



헬기장

공터에는 공사용 자재가 널려있고

능선 한켠에서 늦은 점심을 한다

잠시 쉬고 석골교를 향하여 하산한다.


갈림길

돌탑이 있는 삼거리.

직진은 억산으로 가는 길이고, 석골사는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석골사 4.0km, ↑상운암 0.5km, 억산 3.5km, 딱밭재 1.6km, ↓운문산 0.5km


상운암

석골사 부속 암자로서 함화암이라고도 불렸다

예로부터 천진보탑으로 그 터가 명당이라 기도의 효험이 높은 곳이다.

입구에 있는 약수터는 물이 차고 물맛 또한 일품이다.

스레트 지붕으로 된 자그마한 건물에 상운암 관음전 현판이 걸려있다.

625전쟁 직후 빨치산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모든 당우가 소실되어

1960년에 지금의 요사채를 지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운문산 1.5km, ↓상운암 0.8km, ↑석골사 2.8km



너덜지대

온통 바위길의 연속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넘어진다.

도중에 계곡을 따라 있는 돌탑군을 지난다

천상폭포

보통의 폭포는 한 곳으로 흘러내리는데

여긴 사방으로 퍼져 흘러내린다.

바위길로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발바닥까지 통증이 오는

험하고 힘든 길...말그대로 석골, 돌 골짜기다

정구지바위

지루한 내리막 길을 내려가니 이정표가 나오고.

그 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 밑에 누군가가 '정구지바위'라고 써놓은 것이 눈에 띈다.

정구지란 경상도 사투리로 부추라는 뜻이다

마고 할머니가 정구지를 이고 가다가 조금 흘려 두고 가서

아직도 정구지가 있다고 하뎐가 .....

여기서 얼음굴을 거쳐 운문산 남능으로 오를 수 있고,

상운암을 거쳐 운문지맥을 따라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운문산 2.5km, ↓상운암 1.8km, ↑석골사 1.8km


이후 계속이어지는 너덜길..

석골사가 1.4km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난 후부터

등로가 다소 편안해진다.



범봉갈림길

팔풍재는 범봉과 억산 사이의 안부 고개이며

청도군 금천면 대비사로 넘어간다.

/석골사 1.2km, 범봉 1.36km

치마바위

다소 위험한 좁은 절벽길을 지나며

왼편 계곡 건너로 범상치 않은 암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니 치마바위인 듯 싶다.

억산갈림길

억산을 능선길로 오르는 갈림길이며 안내판도 있다

나무게시판을 지나니..막바로 석골사 후문이 나온다.

/↘억산 2.6km, ↘팔풍재 2.1km, ↓운문산 3.8km


0 億山(944m)

가파른 오르막길과 치솟은 바위봉우리, 군데군데 암반과 절벽이 절경

천년에서 1년이 모자라 용이 못 된 이무기가 밀양 쪽으로 도망가면서

꼬리로 봉우리를 치고 도망가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주변에 이 전설과 관련된 기암괴석들이 있다.

석골사

후문 안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마당을 앞에 두고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뒷편으로 칠성각이 보인다.

한때 석굴사 또는 노전사라고도 불렀다.

옛이름 석굴사(石堀寺)가 언제부턴가 석골사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 비허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에 법조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毒龍)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석골폭포

경내를 빠져나와 내려가다 계곡쪽에 제법 힘찬 물소리가 들린다.

절 바로 아래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폭포를 이루어,

절 이름을 따서 석골폭포라 부른다.

1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한데,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대처럼 턱이 진 암벽이어서

통통거리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맵시 있다.

석골사가 자리한 일출봉은 함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찬 기류 때문에 꽃을 품기만 하고 피우지 못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우측 축대 위로 부도가 보인다.

창의유적기념비

길가에서 커다란 기념비를 만난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몇몇 의사들이 모여 창의를 하였다고 한다.

창의(倡義)란 '국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킴'이란 뜻이다.

석골교

석골마을을 벗어나 동천교 그리고 석골교를 건너니

버스가 그곳에 주차해 있다.

밤새도록 달려 선잠속에 아침을 먹고 힘들게 종주한 가지산, 운문산

능선과 계곡이 깊고 넓게 어우러져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험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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