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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고추와 비슷한 모양을 가져서 고추나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제가 본 바로는 고추보다는 달걀을 닮았고, 단지 열매가 익을 때 붉은 빛을 띠는 것이 고추를 닮았을 뿐입니다. 봄이나 초여름에는 연란 잎과 줄기를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고추나물의 전초는 살균작용, 수렴작용과 지혈작용을 하는 약효가 들어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는 우울증치료제와 관련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고 합니다. 아직 우울증치료를 할 수 있는 성분을 찾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들풀들이 가진 약효들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으니 그저 잡풀로 취급되는 들풀들이 가진 약효들은 그냥 묻혀버리고 말겠지요. 그들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후회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인간에게 유용해야지만 존재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조차도 인간의 교만함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단지 걱정하고 있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하고 있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생태의 문제, 그것은 실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소박한 삶,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 외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습니다. 맘몬의 시대는 모든 것의 가치기준이 '경제성장'이요, '돈(물질)'입니다.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은 모두 비효율적인 일들로 간주가 됩니다. 이런 맘몬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멸망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길임을 알면서도 떠밀려서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우리는 서있는 것입니다. 그 많은 여가활동 중에서 하필이면 골프가 고상한 취미로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잔디일색인 녹색사막이 과연 우리들에게 쉼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쉼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더 많이 소비했으냐에 따라 쉼의 질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놀이도 그렇지요. 놀이를 위해 얼마나 소비했느냐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쉼이나 놀이나 왜곡되어버렸지요. 자연의 품에 안겨 쉬는 쉼, 그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살이를 돌아보는 쉼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는 절실한 생태계의 문제나 환경문제들조차도 하나의 유행코드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생태, 환경에 관련된 책들이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보인다 싶었는데 요즘은 거반 경제와 관련된, 그것도 재태크와 관련된 책들만 가득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보다 근본적인 것들 보다 외향적인 것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고추나물의 약효 중에는 살균작용, 수렴작용, 지혈작용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병균을 죽이는 역할이나 혈관을 오므라들게 해 지혈을 하는 역할은 생명과 관련된 일입니다. 병균이 침투한다거나 피가 조금 나는 상처를 입었다고 생명에 급박한 위협을 하지는 않지만 적절하게 조치하지 않으면 결국 그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진짜 명의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병에 걸리지 않게 한다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명의인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고추나물, 그 작은 꽃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은 고추나물도 제법 매운 구석이 있습니다. 불볕 같은 여름을 담아 가을햇살을 간직하고 피어나는 작은 꽃, 그 꽃이 있어 가을 풀섶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김민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