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이 위태롭다
  • 글·박정원 부장대우

평창올림픽 활강스키장 예정지로 산림유전자원보호림 92.4㏊ 편입대상
주목 등 희귀자생식물 훼손 위기… 산림청 “수목원으로 이식 가능”

▲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은 희귀자생식물이 많아 식물의 보고로 여겨진다. 이 산이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스키경기장 예정지로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조선일보 DB

강원도 가리왕산이 환경올림픽을 내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시험대에 올랐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인 가리왕산 중봉이 올림픽 활강스키경기장 건립 예정지로 크게 훼손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강원도와 평창올림픽유치위원회는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일대 89㏊에 스키슬로프 4면과 남녀 경기코스 2면, 연습코스 2면 등 총 8면의 활강스키경기장과 부대시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남녀 경기코스는 활강과 슈퍼G·복합경기 등이 치러지는 주요 시설이다. 남자코스는 길이 3,360m, 표고차 880m, 평균경사도 26.2%에 달하며, 여자코스는 길이 2,549m, 표고차 780m, 평균경사도 30.7%에 이른다.

복합회전은 길이 540m, 표고차 190m, 평균경사도 35.1%가 된다. 부대시설로 남자용 곤돌라와 여자용 리프트가 설치된다. 이 규격이 국제 활강스키경기장 기준이며, 이 규격을 맞출 수 있는 산이 평창 주변엔 가리왕산뿐이라고 한다.


문제는 가리왕산 일대 총 2,432㏊가 산림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산이라는 점이다. 가리왕산은 2008년 10월 29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6가지 유형 중 주목과 구상나무, 마가목 등이 자라는 ‘희귀식물’ 자생지로 지정됐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2,432㏊ 중 92.4㏊를 활강스키경기장 사업부지로 편입시켜 개발할 예정인 것이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산림에 있는 식물의 유전자와 종(種), 또는 산림생태계의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중점적으로 관리하고자 산림청이 지정, 국가가 보호·관리하는 산림보호구역이다. 따라서 현행법으로 가리왕산에 활강스키경기장을 건립하는 것은 불법이다. 유일한 방법은 특별법을 제정, 환경영향평가나 사전환경성검토를 하지 않는 것뿐이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 권성동·윤석용 의원이 7월과 8월에 각각 올림픽지원특별법안(가칭)을 제출한 상태며, 강원도 역시 도 차원에서 특별법을 낼 예정이다. 특별법은 자연공원 지역 내에서의 개발행위를 가능케 하는 조항과 환경영향평가, 사전환경성검토에 따른 협의를 생략하는 조항을 담을 수 있다.


현행 법으로 안 돼 특별법 제정 예정


그러나 또 다른 당사자인 환경부가 지난 8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평창올림픽 지원법 제정과 관련해 가리왕산 등 활강스키경기장 건설 예정지의 사전환경성검토나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하는 방안을 허용하지 않기로 환경부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평창이 환경올림픽을 표방한 상황에서 사전환경성검토나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와 관련한 환경부 입장은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유영숙 환경부 장관도 지난 7월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리왕산과 관련해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자연보호와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와중에 강원도는 환경훼손 지역을 최소화하기 위해 2개의 훈련 코스를 1개로 축소하거나, 6m인 코스 폭을 5m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공사 중 발생하는 흙을 쌓아 놓았다가 다시 활용하는 한편, 대회 개최 이후 일부 상단부를 복원하고 공사 중 보호수종은 이식할 계획이다. 특히 설계단계부터 관련 부처와 환경단체, 전문가 등과 긴밀하게 협의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훼손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을 보호·관리하는 산림청은 “유전자원보호림이 훼손되는데 대책이 없느냐”는 질문에 “공식적으로 답변할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대변인실, 산지관리과, 산림환경보호과로 전화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아무도 모른다는 입장이었다. 단단히 입단속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대책반을 꾸려 ‘활강스키경기장을 건립할 경우 ‘외부 단체들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희귀수목들을 어디에, 어떻게 이식할 것인가’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관계자는 “가리왕산이 희귀자원이지만 정부 기관으로서 국가가 치르는 큰 행사를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민감한 문제”라면서 “산림청 내의 각 부문 전문가들이 대책반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결정사항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정기회의에서 나온 대체적인 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희귀 자생식물들은 이식하면 못 사는 경우가 많다. 수목원이나 산림과학원의 식물전문 박사들이 이 문제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식물에 관한 한 선진 기술과 연구가 많이 축적돼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국에 수목원이 100여 개 있고, 공식 수목원만 해도 60여 개나 된다.

이들 수목원으로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특정 수목원에 이식하면서 기념관 형식으로 만들어 2018년 평창올림픽 때 옮겨온 식물 전시관이라 이름 붙여 역사 교육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조성되는 세종시수목원으로 이식할 수도 있다. 신도시 조성과 첫 동계올림픽 개최라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고도가 문제 된다면 봉화와 영양에 건립되는 백두대간수목원에도 옮길 수 있다. 백두대간수목원에 ‘알파인가든(Alpine Garden·고산정원)’을 만들어 습도와 기후, 토양 등을 원래 상태와 동일하게 조성하면 된다.

문제는 수목이식 생존율을 어떻게 최대로 끌어올리느냐 하는 것이다. 자생식물은 기후와 온도, 토양조건 등 생장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옮긴 장소에서도 수목의 애초 생장조건을 맞춰줘야 죽지 않고 겨우 자랄 정도다. 논란이 계속되면 환경단체도 참여시켜 대안을 도출하겠다. 지금은 과거의 덕유산에서보다 훨씬 높은 이식성공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가리왕산 자생식물들. 사진 위로부터 난티나무, 만병초, 땃두릅 및 만병초 자생지, 땃두릅나무.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르면서 덕유산에 있는 주목 253그루, 구상나무 113그루를 옮겨 심었지만 2003년 중간조사 결과 주목 112그루, 구상나무는 모두 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장 이동거리 30분 원칙’으로 덕유산 안 돼


1996년 주목 자생지 69㏊를 중심으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은 2009년 ‘희귀식물’ 자생지로 확대 지정됐다. 가리왕산에는 현재 주목뿐만 아니라 보호식물로 꼬리겨우살이·눈측백·도깨비부채·땃두릅나무·만병초 등과 유용수종으로 가래나무·박달나무·피나무·산겨릅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다.


2009년 확대 지정하면서 ‘가리왕산 일대는 우리나라 희귀 및 특산 식물의 자생지이며, 자연생태계 보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판단된다’고 지정이유를 밝혔다.

만약 활강스키경기장 건립이 확정되면 총 261㏊의 사업면적 중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92.4㏊가 편입된다. 전체 스키장 면적의 35%에 해당하는 넓은 면적이다.


이에 대해 녹색단체는 “덕유산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르기 위해 덕유산에 활강스키경기장을 만들면서 자생식물들이 절반 이상 고사했다”며 “국립공원보다 보존 가치가 높은 가리왕산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끝난 뒤 방치되고 있는 덕유산 활강스키경기장으로 옮겨 경기를 치르면 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강원도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첫째는 올림픽은 도시 단위로 개최되고, 둘째 도시를 옮기더라도 ‘경기장 간 이동거리 30분 이내’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이유는 평창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무주 대안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아마 활강스키경기를 가리왕산에서 치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럴 경우 과연 어느 정도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치를 수 있을 것인지, 환경올림픽을 내건 평창 동계올림픽이 가리왕산을 두고 벌써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 가리왕산 주목은 일찌감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사진은 정선 두위봉 정상 부근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목나무. /사진·조선일보 DB

점봉산·가리왕산·계방산·울릉도 등 전국 11만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지정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산림 내 분포하는 산림유전자원 또는 산림생태계 보전을 위해 지방산림청장 또는 시·도지사가 지정하며, 산림보호법 시행규칙 제3조 제4항에 따라 7가지 유형으로 구분 지정된다. 먼저 원시림은 현재까지 인위적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적인 임분구조, 즉 천연림을 그대로 간직한 숲을 말한다.

희귀식물자생지는 멸종위기식물 및 희귀식물,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특산식물이 분포하는 산림을 나타낸다. 진귀한 임상은 우리나라 고유의 진귀한 임상과 산림생태계 및 경관보전이 필요한 산림을 말한다. 유용식물자생지는 사람에게 필요하거나 실제적 또는 잠재적 가치가 있는 식물이 자생하는 산림이다.

고산식물지대는 고산대(高山帶)에 분포하는 눈잣나무, 사스래나무, 월귤나무 등이 자생하는 산림이 해당된다. 산림습지 및 산림 내 계곡천 지역은 산림 내 산간 습지 및 보전가치가 높은 계곡천 지역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자연생태계보전지역은 우리나라 산림생태계 보전 및 유지를 위해 보호되어야 하는 지역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375개소 11만2,000여㏊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지정해 놓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전국에 고루 분포돼 있으며, 그중에서도 북부산림청에서 관리하는 강원도 지역이 가장 넓게 지정돼 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을 크게 나눠서 보면 6개 구역으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DMZ 일원이다. 이곳은 활엽수원시림과 진귀한 임상, 유용 희귀식물 자생지 등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총 5만3,000여㏊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해당한다.


이어 울창한 원시림과 야생화의 보고(寶庫)인 점봉산 구역이다. 총 2,369㏊에 달하는 여기는 한반도 자생종의 20%인 854종의 식물이 자라는 산림자원의 보물 산이며, 울창한 신갈나무와 거제수나무, 고로쇠나무 등 풍부한 원시천연림을 자랑한다.


다양한 약초와 울창한 주목 군락지가 있는 계방산 구역은 4,344㏊에 달한다. 자작나무와 단풍나무, 참나무 등 다양한 천연고목들이 폭넓게 분포하며 1,577m의 해발 고도에 사시사철 다양한 약초와 산삼이 서식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국도 중 가장 높은 해발 1,080m의 구름다리 국도가 있다.


울창한 천연활엽수림과 주목·구상나무·마가목 등 희귀수목의 분포지로 유명한 가리왕산 일대는 총 2,432㏊가 지정돼 있다. 이곳은 한계령풀·금강제비꽃·도깨비부채 등 희귀자생식물의 보고로 더 알려져 있다.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한 소광리 일대도 5,467㏊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다. 이곳은 세계 최고의 보전상태를 자랑하는 200년 이상의 금강송이 곳곳에 분포하며, 꽃창포·노랑무늬붓꽃·참좁쌀풀·도깨비부채 등 희귀식물 11종도 있다. 2000년에 개최된 제1회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곳이다.


마지막으로 천혜의 비경과 울창한 원시림을 간직한 울릉도도 1,477㏊가 지정된 상태다. 울릉도는 수려한 경관과 천혜의 해양산림생태계로서 국내 최고의 보전가치를 가진 산림이며,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섬기린초·섬노루귀·섬말라리 등 희귀한 야생초와 야생화가 천국을 이룬다. 오랜 세월 격리되어 희귀식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가장 학술적 가치가 높은 산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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