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임세웅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 아래에는 용의 머리가 박혀 있어 절을 지킨다고 합니다.

일주문 뒤편에는 또 다른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고청량산해천사'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데 

창건 이후 큰 화재 사고를 여러 차례 겪다 보니 

바다와 강을 뜻하는 '해천'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1823년 다시 큰불이 나자 해천사를 중창한 후 다시 조계산 선암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선암사 곳곳에 '수(水)' '해(海)'와 같은 글자가 새겨진 이유와 

다른 사찰에 비해 연못이 많은 이유는 화재로부터 절을 지키고자 했던 

 

스님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대웅전 현판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글씨로 임금만이 글씨 앞에 이름을 새기는 것인데 

자신의 이름을 글씨 앞에 쓴 것은 당시 김조순의 세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만세루 '육조고사' 현판은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부친인 김익겸(1614~1636)이 쓴 글씨로 

달마대사가 살았던 위진 남북조시대 여섯 나라 육조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절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지 13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자 왕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때 선암사의 두 스님이 기도를 시작했고 눌암 스님은 원통전에서,

해붕 스님은 대각암으로 들어가 100일 기도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1790년 훗날 순조가 된 '이공'이 태어났습니다.

훗날 왕위에 오른 순조가 선암사에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 편액과

은으로 만든 향로, 금병풍, 가마 등을 선물했다고 전해지며

인(人), 천(天)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대복전은 원통전 내부에 걸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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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만의 동반공개,

 

매천 황현의 절명시와 만해 한용운의 추모시

 

 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 죽음으로 경술국치에 항거한 매천 선생의 칠언절구 한시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매천 황현 선생 후손 소장

 

 

“어지러운 세상에 떠밀려 백발의 나이에 이르도록(亂離滾到白頭年)

몇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가 이루지 못했네.(幾合捐生却未然)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으니(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 가물거리는 촛불 푸른 하늘 비추누나.(輝輝風燭照蒼天)…

새 짐승 슬피울고 바다와 산도 시름거리니((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세상은 다 망하고 말았네.(槿花世界已沈淪)

가을 등불 아래 책덮고 역사를 돌이켜보니(秋燈掩卷懷千古)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

 

 

 

 

황현 선생의  ‘절명시’를 수록한 <대월헌절필첩>. 역시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다.|매천 황현선생 후손 소장

황현 선생의 ‘절명시’를 수록한 <대월헌절필첩>. 역시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다.|매천 황현선생 후손 소장

 

우국지사이자 시인인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이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더덕술에 아편을 타마시고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이다.

 

황현 선생은 사직이 망하는 날 백성은 누구나 죽어야 옳다고 여겼다.

선생은 “사대부들이 염치를 중히 여기지 않고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종사를 망쳐 놓고도 자책할 줄 모른다”고 통탄했다.

만해 한용운은 이런 황현 선생의 순국에 감동하여 1914년 추모시 ‘매천 선생’을 친필로 써서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매천 황현 선생의 순국에 감동하여 직접 친필로 지은 추모시

 ‘매천선생’. 한용운 선생은 1914년 이 시를 황현 선생의 유족에게 직접 보냈다.

이 시는 황현 선생의 <사해형제>에 실려있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이다.|매천 황현 선생 후손 소장

 

“의리로써 나라의 은혜를 영원히 갚으시니(就義從容永報國)

한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네.(一暝萬古劫花新)

이승의 끝나지 않은 한 저승에는 남기지 마소서.(莫留苦忠不盡恨)

괴로웠던 충성 크게 위로하는 사람 절로 있으리.(大慰苦忠自有人)”

 

 

문화재청이 19일부터 3월14일까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제10, 12옥사에서 개최하는 ‘문화재에 깃든 100년전 그 날’ 특별전은

조선말기 우국지사 ‘매천 황현’의 유물들로 시작한다.

전남 순천의 황현 선생 후손들이 100년 넘게 소장하고 있다가 이번에 최초로 공개한 자료들이다.

 

칠언절구 절명시 4수가 수록된 <대월헌절필첩>과,

만해 한용운 선생(1879~1944년)이 직접 써서 황현의 유족에게 전해준 ‘매천선생’ 시,

그리고 그 시를 실은 황현의 <사해형제> 등이 그것이다.

 

또 황현 선생이 안중근 의사(1879~1910)의 공판기록과

안의사가 하얼빈(哈爾濱) 의거 전에 남긴 시 등을 꼼꼼히 스크랩하고

밑줄까지 표시한 <수택존언(手澤存言)>도 역시 첫선을 보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위해 하얼빈을 방문하기 이틀 전인

1909년 10월24일 저녁에 지은 시(‘장부처세가’)는 영웅적인 기상을 뽐내고 있다.

 

 

황현 선생이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과 안의사가 하얼빈 의거 전에 남긴 ‘장부처사가’ 등을 꼼꼼히 스크랩하고 빝줄까지 표시한 ‘수택존언’ 등도 공개된다.

황현 선생이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과 안의사가 하얼빈 의거 전에 남긴 ‘장부처사가’ 등을 꼼꼼히 스크랩하고

빝줄까지 표시한 ‘수택존언’ 등도 공개된다. 

 

 

“대장부 세상에 태어나(丈夫處世兮) 그 뜻이 크도다.(其志大矣)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時造英雄兮)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英雄造時) 천

하를 굽어보니(雄視天下兮)

어느 날에 큰 일을 이룰꼬.(何日成業)

동풍은 점점 차가우나(東風漸寒兮)

장사의ㅡ 의지는 뜨겁도다.(壯士義熱)…”

 

(<대한매일신보> 1909년 12월23일) 이번 특별전에서는 황현 선생의 안경과 벼루, 필가 등도 선을 보인다.

 


 

 

매천 황현 선생의 생활유물들. 안경과 벼루, 필가 등이다.|순천대박물관 소장

매천 황현 선생의 생활유물들. 안경과 벼루, 필가 등이다.|순천대박물관 소장

 

특별전에는 최근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거나 등록예고된 독립 운동 관련 유물들이 대거 선보인다.

최근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이봉창 의사(1900~1932)의 선서문과 의거관련 유물도 선보인다.

 

윤봉길 의사의 ‘선서문’(보물제 568-1호)도 출품되므로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또 등록문화재가 된 ‘일제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제 730호)도 공개된다.

 

안창호·윤봉길·유관순·김마리아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4858명의 신상카드는 물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지역 3·1운동 수감자와 여성 수감자의 활동상황도 소개된다.

 

또한 지난해 등록문화재가 된 이육사 시인(1904~1944)의 친필원고인 ’편복‘(제713호)와

 ’바다의 마음‘(제738호)은 희귀자료다. 현재까지 딱 두 편 남은 이육사의 친필원고이기 때문이다.

 

 

 

 

 심훈의 <상록수> 친필원고 .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위한 초고형태로 1935년 7월쯤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심훈기념관 소장

심훈의 <상록수> 친필원고 .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위한 초고형태로 1935년 7월쯤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심훈기념관 소장

 

 

특별전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조소앙 선생(1887~1958)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등록문화재 제740호)도 공개된다.

 

이 강령초안은 삼균주의에 입각하여 독립운동과 건국의 방침 등을 정리한 국한문 혼용의 친필문서이다

또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붓글씨인 ‘백범 김구 유묵 신기독(愼其獨·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

(등록문화제 제442-2호)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글씨와 1945년 초판발행하여

국어·중국어·영어 순으로 가사를 배열한 한중영문중국판 한국애국가 악보(등록문화재 제576호) 등도 출품된다.

젊은 도쿄(東京) 유학생들이 1919년 2월8일 발표한 조선청년독립단 명의의 ‘2·8독립선언서’도 전시된다.

 

 


 

 

이육사의 친필원고 ‘편복’.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대 일제강점기 조선 민중의 현실을 형상화한 작품이다.|이육사 문학관 소장

이육사의 친필원고 ‘편복’.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대 일제강점기 조선 민중의 현실을 형상화한 작품이다.|이육사 문학관 소장

 

심훈 선생(1901~1936)의 <상록수> 친필원고 9장 중 3장과 만주지역 독립운동사의 핵심인물인

이규채 선생(1890~1947)의 일기과 사진도 원본으로 전시된다.

 

이밖에도 중국 중칭(重慶) 망명중이던 이시영·김구·유동열·김규식 등 23인의 임시정부 요인들이

8·15해방과 더불어 중칭을 떠나던 전날 저녁에 모여 각자의 포부와 기대를 붓으로 옮긴

<제유기념첩>도 반드시 봐야할 유물이다.

 

<광복군가집 제1집>(등록문화재 제474호)과 ‘루즈벨트 외교서한’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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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봉가훈

 

분봉가훈(盆峯家訓)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주(李澍)가 자손을 교도하기 위하여 지은 교훈을 모은 책입니다.
분봉은 이주의 아호입니다.


-도량은 더욱 크게 하고

-위엄은 더욱 무겁게 하며

-덕은 더욱 두텁게 하고

-마음은 더욱 안정되게 하며

-의지는 더욱 곧고 단단하게 하고

-말은 더욱 충직하게 하며

-용모는 더욱 공손하게 하고

-생각은 더욱 자세하고 깊게하며

-일은 더욱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나머지 가훈들도 찾아 보았습니다.


1. 忌日不出, 將赴宴時, 當思其日, 國忌與否, 家忌臨近與否, 將弔喪, 當思祭無有, (此條也, 本有之, 合爲四十八條.)
꺼리는 날에는 나가지 마라. 잔치에 가고자 할 때는 마땅히 그날이 나라에서 꺼리는 날인지 여부와 집안에서 꺼리는 날이 다가왔는지 여부를 생각하여야 하며, 조상을 하러 가려면 마땅히 제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야 한다.(이 조항은 본래 있는 것이니 합하여 48조항이다)

2. 與人約, 當思其可踐.
남과 약속을 함에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3. 與人共事, 當思其合議.
남과 함께 일을 함에는 의론을 합치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4. 被人求請, 不牽於情, 不奪於威, 惟義之所在, 則從之.
남에게 청탁을 받을 때는 정에 이끌리지 않아야 하며, 위협에도 빼앗겨서는 안된다. 오로지 의로움이 있는 곳을 따라라.

5. 被人언(口변의 言)辱橫逆, 當思反己, 不可較其曲直.
남에게서 헐뜯거나 욕보임이나 거스름을 당하면 마땅히 자기가 곡직을 헤아릴 수 없었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6. 見人善, 則可揚於路人.
남의 선함을 보면 길가는 사람에게까지 칭찬을 하라.

7. 見人惡, 則可隱於父子.
남의 악함을 보면 부자에게도 숨겨라.

8. 喜時, 言動, 常恐其淫佚驕肆.
기쁠 때는 언동을 항상 음탕하거나 교만 방자할까를 두려워하라.

9. 怒時, 言動, 常恐其暴戾粗悍.
성날 때에는 언동을 항상 사납거나 조급할까 두려워 하라.

10. 勞事, 常先於人.
수고로운 일은 항상 남보다 먼저 하라.

11. 便事, 常後於人.
쉬운 일은 항상 남보다 뒤에 하라.

12. 聞人譽己, 思其繼可譽之實, 而不可喜.
남이 자기를 칭찬함을 들으면 그 칭찬의 실질을 지속할 것을 생각해야 하며 기뻐해선 안된다.

13. 聞人毁己, 思去其可毁之實, 而不可怒.
남이 자기를 비방함을 들으면 그 비방의 실상을 없앨 것을 생각해야 하며 성내서는 안된다.

14. 在稠中, 言動, 當處人後.
동요 중일 때는 언동을 항상 남보다 뒤에 있어야 한다.

15. 在名譽間, 務爲韜晦.
명예 사이에 있을 때는 재덕을 갖춤에 힘써야 한다.

16. 發言, 當思下氣怡聲.
말을 할 때는 마땅히 기운을 낮추고 온화한 목소리를 낼 것을 생각해야 한다.

17. 作事, 當思躁妄顚倒.
일을 할 때는 마땅히 조급하고 경망스러워지며 뒤집힐 것을 생각해야 한다.

18. 將出言, 當思無妄而不可信.
말을 하려면 마땅히 망령되어 믿음이 없어지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19. 將造行, 當思無處而不可任情.
행동할 때는 처한 곳이 정에 이끌리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20. 入人之門, 門有車馬, 必問客爲誰.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문에 마차가 있으면 반드시 손님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라.

21. 入人之門, 必問客有無.
남의 집에 들어가서는 반드시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라.

22. 被人邀, 必問客來與否.
남이 맞이함을 받게되면 반드시 객이 올지 여부를 물어보라.

23. 入人家坐, 有不識者, 言動, 須爲恭謹.
남의 집에 들어가 앉아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언동을 함에 모름지기 공손하고 삼가라.

24. 不證人之記, 況可書乎, 在家, 則有不得已者, 是不可盡廢也.
남의 문서기록을 간해서는 안된다. 하물며 책은 말할 것도 없다. 집에 있어서는 부득이한 것도 있으니 이것을 모두 물리쳐서는 안된다.

25. 志節, 宜 ? ? 落落.
뜻과 절개는 마땅히 ?? 낙락해야 한다.

26. 言邈, 當謙遜恭謹.
말과 용모는 겸손하고 공손해야 한다.

27. 量欲其大.
포부(역량)는 크게

28. 威欲其重.
몸가짐(위엄)은 무겁게

29. 德欲其厚.
덕(德)은 두텁게

30. 心欲其定.
마음은 안정되게

31. 志欲其堅.
뜻은 견고하게

32. 言欲其忠.
말은 충실하게

33. 邈欲其恭.
용모는 공손하게

34. 慮欲其深.
생각은 사려깊게

35. 事欲其愼.
일은 신중하게(삼가서) 


36. 心定則氣定, 故倉卒無疾, 言遽色.
마음이 안정되면 기운이 정리되는 까닭에 미처 어찌할 사이 없이 매우 급작스러워도 잘못이 없게되니, 말은 색에 의거한다.

37. 心和則氣和, 故喜怒, 不形於辭色.
마음이 온화하면 기운도 화락해지는 까닭에 기쁨과 노함이 말빛에 나타나지 않는다.

38. 凡爲言語達意, 而止不可已甚, 已甚則粗矣, 不可形容, 形容則塵矣.
모름지기 말을해서 뜻을 통함에 너무 심한 데까지 이르러서는 안되니, 너무 심하면 조악해진다. 용모에 나타나게 해서는 안되니 나타나면 본성을 떠난 것이다.

39. 凡與女子, 對不使兩目, 相擊己, 雖無心被, 必因此, 生淫, 傍人한之, 必疑其有私, 在娼流, 猶然, 況不爲娼流者乎.
모름지기 여자와 함께 있으면 두눈을 서로 마주쳐서는 안된다. 설령 그녀에게 마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로 인하여 음탕함이 생겨나고, 곁사람이 엿보게 되어 반드시 그 사사로움을 의심받게 된다. 기생에 있어서도 그러하리니 하물며 그런 짓을 하지 않는 자에 있어서랴. 


40. 凡行道女子, 過則不可顧親, 凡在席女子坐, 則不可寓目, 此養淫之道.
무릇 길을 감에 여자가 지나가면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무릇 자리에 앉았는데 여자가 있으면 눈길을 보내지 말아야 하니, 이것은 음탕함을 부추기는 방법이니라.

41. 凡乞簡請簡, 一切不行, 如有不可廢者, 必須再思.
무릇 서간을 구하거나 청하는 일은 일절 해서는 안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면 반드시 거듭 생각해야 한다.

42. 凡內不足者, 不宜向人道, 此乃不自慊處, 必須禁斷, 克去不可, 因仍苟且
무릇 안에서 부족한 것은 마땅히 남을 향해서는 안되니, 이것은 스스로 흐뭇하지 못하게 되니 반드시 끊어야 한다. 능히 제거할 수 없으면 이로 인해 구차해진다.

43. 凡有不善, 必有所諱, 足非無好惡之智, 羞惡之心, 猶且陽爲陰.
무릇 선하지 못함이 있으면 반드시 꺼리는 것이 있게 된다. 족히 좋하하고 싫어함의 지혜와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아님이 없으니, 또한 양이 음이 됨과 같다.

44. 掩則豈克己之功, 有不誠也, 與是以可諱於人者, 一切不爲.
숨기는 것이 어찌 자기를 이기는 공이랴! 진실함이 없음이니 이와 더불어서 남들이 꺼리는 것이니 일절 해서는 안된다.

45. 吾性剛, 是以多過, 吾量狹, 是以多失, 吾言煩, 是以多責.
내 성품이 강직하면 이로써 허물이 많고 내 도량이 좁으면 이로써 잃음이 많아지며, 내말이 번거로우면 이로써 질책이 많아진다.

46. 若柔其剛, (?)其寬, 狹簡其煩, 吾其免矣.
만약 강직함을 부드럽게 하면 그 너그러움을 ?해지고, 번거로움을 간략하게 하면 그것을 면할 수 있게 된다.

47. 音聲, 必須和緩低闊, 雖甚怒盛喜, 不可變.
음성은 반드시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나직하게 해야 한다. 비록 매우 성나고 기쁘더라도 변색해서는 안된다.

48. 持身, 必須植立端重, 雖私居燕處, 不可改.
몸가짐은 반드시 곧게 세우고 단정하고 무겁게 하며, 비록 사사로이 보잘 것 없는 곳에 있게 되더라고 고쳐서는 안된다. 

*출처: 연안이씨 사이트 

 

 

사기에 나오는 명언, 명구 | 서예자료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길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원문: 千金之子 不死於市 /출처: 貨殖列傳

 

토끼가 잡히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진다.

원문: 蜚鳥盡良弓藏 狡兎死走狗烹 /출처: 越王句踐世家, 淮陰侯列傳>

군자는 헤어지더라도 그 사람을 욕하지 않는다.

 

원문: 君子交絶不出惡聲 /출처: 樂毅列傳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행동하고,

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화장한다.

원문: 士爲知己用 女爲說己容 /출처: 報任少卿書

 

그릇을 머리에 인자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원문: 爲戴盆何以望天 /출처: 報任少卿書

 

사람이란 본디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터럭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니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이다.

원문: 人固有一死, 死有重於泰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출처: 報任少卿書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고, 백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난간에 기대 서지

않으며, 현명한 군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원문: 千金之子坐不垂堂, 百金之子不騎衡, 聖主不乘危而幸 /출처: 晁錯列傳

 

달은 차면 기울며, 사물은 성하면 쇠락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원문: 月滿則虧, 物盛則衰, 天地之常 /출처: 田叔列傳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을 모르면 해독을 당한다.

원문: 知進而不知退, 久乘富貴, 禍積爲 /출처: 田叔列傳

 

가만히 앉아 성패를 지켜보고 있다가 이기는 쪽으로 빌붙어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

원문: 欲坐觀成敗, 見勝者欲合從之, 有兩心 /출처: 田叔列傳

 

높은 자리에 있으면 시기와 의심을 받는다.

여자는 아름답든 못생겼던 궁중에 있으면 시샘을 받고,

선비는 어질고 어질지 않든 간에 조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심을 받는다.

원문: 女無美惡, 居宮見 ,士無賢不肖, 入朝見疑 /출처: 扁鵲 倉公列傳

 

() 비슷한 성어로 大名之下難以久居 高山之無美木

명성이 높은 지위에는 시기나 모함으로 오래 있기 어렵고, 높은 산위에는 잘 자란 나무가 없다

- ''은 메산 아래 이마 전()으로 산꼭대기 전이란 뜻이다.

 

너무 고와도 불길한 징조다. 아름답고 좋은 것은 다 좋지 못한 불길의 그릇이다.

원문: 美好者不祥之器 /출처: 扁鵲 倉公列傳 () 공자가 한 말을 사마천이 인용했다.

 

복숭아나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밑에는 절로 길이 난다.

원문: 桃李不言, 下自成蹊 /출처: 李將軍列傳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가 되지마라.

원문: 寧爲鷄口, 無爲牛後 /출처: 蘇秦列傳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일을 못이룬다.

원문: 吾恐其樂小利而不遂, 故召辱之 /출처: 張儀列傳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수레를 뒤엎는다.

원문: 禽困覆車 /출처: 樗里子甘茂列傳

 

부유하고 권세가 높아지면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다. 원문: 富貴多士, 貧賤寡友, 事之固然也 /출처: 孟嘗君列傳

 

나무의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진다.

나무의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를 부러지게 하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의 기둥을 해친다.

원문: 木實繁者披其枝, 披其枝者傷其心 /출처: 范雎蔡澤列傳

 

사람이 곤궁해져야 근본을 되돌아 본다.

사람이 곤궁해지면 근본을 되돌아 본다. 그래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게되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자가 없다.

원문: 夫天者, 人之始也; 父母者, 人之本也. 人窮則反本, 故勞苦倦極, 未嘗不呼天也; 疾痛慘,

未嘗不呼父母也 /출처: 屈原 賈生列傳

 

인생은 흰 망아지가 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짧다.

원문: 人生一世閒, 如白駒過隙耳 /출처: 魏豹彭越列傳

 

싸움에서 진 장수는 말이 필요 없다.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원문: 臣聞敗軍之將, 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 不可以圖存 /출처: 淮陰侯列傳

 

파리도 천리마의 꼬리에 붙으면 천리길도 갈 수 있다.

성현을 따라다녀 그 덕에 공을 이룸을 비유

원문: 蒼蠅附驥尾而致千里 /출처: 伯夷列傳

 

() 원문은 '안연이 비록 재주가 뛰어나다고 하나 공자에 의해 이름을 드러낼 수 있었다.

顔淵 雖篤學, 附驥尾而行益顯

 

하늘의 도는 공평하여 항상 착한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푼다.

하늘의 도는 지극히 공평하여 누구라고 더 친절히 대하는 일이 없고

다만 항상 착한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푼다

원문: 天道無親常與善人 /출처: 伯夷列傳

 

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것인가.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악을 행하면 화를 받는 것을 천도라고 하는데,

세상의 실상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는것 같다고 의심하여 원망하는 뜻

원문: 所謂天道是耶非耶 /출처: 伯夷列傳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기 뜻을 드러낸다.

원문: 君子?於不知己而信於知己者 /출처: 管晏列傳

 

군주가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주어야 군신간에 더 친해질 수 있다.

원문: 將順其美, 匡救其惡, 故上下能相親也 /출처: 管晏列傳

군자는 그 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능숙한 장삿꾼은 물건을 깊이 숨겨두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원문: 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 容貌若愚 /출처: 老子 韓非列傳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말라 (노자의 한 말)

/원문: 道不同不相爲謀 /출처: 老子 韓非列傳

 

호랑이도 함정에 빠지면 꼬리를 흔들며 음식을 구걸한다.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중에 있을 때는 온갖 짐승들이 두려워하지만,

함정에 빠지게 되면 그 호랑이도 꼬리를 흔들며 음식을 구걸한다.

원문: 猛虎處深山, 百獸震恐, 及其在穽檻之中, 搖尾而求食 /출처: 報任少卿書

 

엉킨 실을 풀 때 어찌 주먹으로 쳐서 풀 수가 있겠는가?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된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가 불리하게 하면 저절로 물러나는 법이다.

원문: 夫解雜亂紛糾者不控捲, 救鬪者不搏, 批亢?, 形格勢禁, 則自爲解耳 /출처: 孫子 吳起列傳

 

실천을 잘 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실천을 잘 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 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다.

원문: 能行之者未必能言, 能言之者未必能行 /출처: 孫子 吳起列傳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깨뜨릴 수 있다.

사람의 기세는 일시적으로 하늘(天道)을 이길 수 있지만,

천도가 안정되면 역시 사람을 이기게 된다.

원문: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 /출처: 伍子胥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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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篆書)

 

전서글씨가 자전형태로 올라와 있는 자료가 있어 옮겨 왔습니다.

/오똑이(kalsanja)

 























































 

 

조선 후기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전서 글씨[書巢觀瀾]

 

 

[글자의 원문과 내용]

 

書巢觀瀾(서소관난)    글씨의 보금자리(서재)에서 물결을 본다.

 

 

因樹爲屋(인수위옥)     나무로 집을 짓네.

書于雲華石室 寶山人   운화석실에서 쓰다. 보산인

 

※ 출전 : 후한서 신도반전(申屠蟠傳)

 

 

[출전의 원문과 내용]

 

乃絶迹於碭之間 因樹爲屋 自同傭人

「반은 옛 양나라 땅 탕이란 곳에 숨어서 뽕나무에 의거하여 그것을 기둥으로 삼아 집을

만들고 스스로 머슴들과 똑같이 처신하였다.」

 

신도반(申屠蟠)

 

후한 진류(陳留) 외황(外黃) 사람. 자는 자룡(子龍)이다. 집안이 가난해 칠공(漆工)이 되었다.

군(郡)에서 주부(主簿)로 불렀지만 나가지 않았다.

숨어살면서 학문에 정진해 오경(五經)에 두루 정통했고, 도위(圖緯)에도 밝았다.

한나라 황실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고 양탕(梁碭)에 자취를 감추고 나무를 심어 집을 삼았다.

태위(太尉) 황경(黃瓊)과 대장군 하진(何進)이 연이어 불렀지만 역시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동탁(董卓)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대신하자 순상(荀爽) 등이 모두 협조했지만 그만

홀로 끝까지 고귀한 뜻을 지켰다.

 

 

[느낀점]

 

이 글은 출전의 내용이 후한 시대 기울어져 가는 조정을 보고 자취를 감추어 은둔하며

살았다는 신도반(申屠蟠)에 얽힌 고사가 있는 사자 성어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능호관 선생의 종강모루에서 은거하는 심정을 신도반의 처지에 빗대어

쓴 글로써 종강모루에 들어올때 이미 조정이 어떤 이유로 자신을 벼슬길로 부르더라도

결코 나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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