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원시 가리왕산" 주장에 강원도는 "최대 70년"
평창동계올림픽 활강스키장 벌목공사... 환경단체 "투런 고려하라"
윙윙-윙-윙-윙-윙-.
나무들이 가장 싫어하는 소리일 것이다.
최근까지 인간의 접근을 막아왔던 가리왕산에 거친 기계톱 굉음이 메아리친다.
그때마다 나뭇잎이 몸서리를 친다.
중장비에 짓밟힌 수백 년 고목의 눈물
▲ 녹색연합 임대영·박표경 활동가가 양팔을 펼쳐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94.2cm 가량의 나무가 벌목되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스키장 예정지인 가리왕산(해발 1561m,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공사현장 인근에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개발저지를 위해 대거 포진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공사 예정지 인근에는 '환경단체 물러가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지난 21일, 안개가 자욱한 시간, 야영을 하던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하나둘 텐트에서 나와 밤새 얼어붙은 몸을 녹이느라 햇살을 찾아 헤맨다.
오전 7시,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에 몸을 실은 한 활동가는 추위가 밀려오는지 어서 차 문을닫아 달라고 했다.
아침 햇살이 가득한 강변을 끼고 30여 분을 달려 가리왕산 휴양림 입구에 도착. 차량은 털털거리며 산길을 조심조심 오른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타고 오르자 솜사탕처럼 뭉글뭉글 피어오른 구름이 발밑에 그림을 그리면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게 1시간 가량 산길을 힘겹게 올라 해발 1100m에 도착했다.
이들은 숙소에서 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을 두고서 시간이 두 배 가까이 걸리는 반대편 산 쪽으로 우회해서 왔다.
시공사가 오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 환경단체의 진입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는 이들과 부딪치기 보다는 우회길을 택했다.
동계올림픽 경기장 건설을 맡고 있는 강원도청 담당자는 "(공사 현장까지) 걸어서 가는 경우는 막지 않지만 차량은 막는다,
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시공사와 (강원도) 발주처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로 막은 것"이라고 말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벌목하는 현장이라 위험하고 상황이 민감하다"며
"주민 이주가 늦어지고 환경단체가 찾아오면서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차량이 도착한 그곳은 기계톱 소음으로 가득했다. 막 베어진 것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쌓여있다.
참나무에 매달려 울던 도토리도, 거대한 아름드리 고목도 기계톱 앞에서 생을 마감한다.
중장비에 뿌리까지 파헤쳐진 고목은 그렇게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더불어 살아가던 식물들은 중장비의 톱니바퀴에 짓밟힌다. 벌들은 보복이라도 하려는 듯 윙윙거리며 달려든다.
거대한 수목이 잘려나간 자리 인근에는 수목 이식을 위한 어린 나무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왕실에서 보호구역으로 엄격하게 관리되면서 수종, 수량이 다양하고 희귀식물이 많은 곳이다.
2008년 정상부를 포함해 2475ha를 희귀식물자생지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가리왕산은 너덜지대가 많고 대규모의 풍혈지역이 있다.
때문에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식물과 주목, 왕사스레나무, 마가목 등 한국 희귀수목의 분포지이며,
나무의 연령대도 다양해 산림가치가 매우 높다.
전문가들은 산의 등급을 문화재로 본다면 가리왕산은 국보 1호로 지정하고도 남는다고 극찬한다.
하지만 가리왕산은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해 정상부에서 시작해
사면과 계곡을 따라 벌목과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리왕산 아니어도 된다" vs. "유치위에서 실사 받아 결정"
▲ 중장비가 투입되어 벌목된 나무들을 정리하고 있다.
가리왕산 개발에 대해 임대영 녹색연합 활동가는 "환경 훼손을 막고, 귀한 세금을 아낄 수 있는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럼에도 단 3일의 경기를 위해 500년 원시림 가리왕산을 파헤치는 것은
정부와 강원도가 가리왕산을 지키려는 국민의 바람을 끝내 저버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임 활동가는 "가리왕산 활강스키장 건설을 위해 진행한 환경영향평가서를 살펴보면, 공사 과정에서 잘려나가는 나무는 5만 그루에 달한다.
그러나 강원도가 이식하겠다고 한 나무는 단 181그루에 불과하다"며 "대체 무엇이 친환경 올림픽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국제스키연맹은 활강스키경기에 대해 투런(2Run) 규정을 두고 있다,
표고차 350m~450m의 경기장에서 두 번에 걸친 완주 기록 합산으로 활강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고 750m 규정도 허용하고 있다"며
"표고차 700m인 용평스키장에 50m 구조물을 세워 활강경기를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물을 세워 활강경기를 치른 전례는 이미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 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고, 가리왕산도 보전할 수 있는 방안과 환경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8년에 평창에서 진행되는 동계올림픽은 아직 4년의 시간이 남았다.
가리왕산을 보호하고 예산을 절감하고, 동계올림픽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추진하는데 이 시간이면 충분하다"며
"즉각 가리왕산 벌목 중단하고 '투런'이나 '표고차 750m'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강원도청 담당자는 "환경단체에서 주장하는 '500년 표현'은 맞지 않다,
조선시대에 출입을 금한 것은 주변의 인삼재배 때문이었다"라며
"여기는 과거에 화전민이 살던 곳으로 집터도 확인했다, 식생 전문가들은 수령을 최대 7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입시 시험을 쳐도 기관에서 표준을 정하는데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서는 규정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며
"유치위원회에서 실사까지 받아서 결정이 되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바꿀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에서 주장하는 '투런 규정'에 대해서는 "조직위에 공식적으로 질의해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투런'은 입문자들이 하는 것으로 올림픽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고 말했다.
"폭1m 국내 최대... 200년된 신갈나무도 싹둑"
가리왕산 수목·초하류 이식 공동조사... "올림픽 후 복원 어려울 듯"
▲ 전국에 모든 산을 수렵했다는 이병천 박사가 수령이 100년이 넘어 보이는 신갈나무에서
동공이 없이 깨끗한 상태의 수목은 보기 힘든 지경이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가리왕산(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는 벌목이 진행되고 있다.
3일간 열릴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활강스키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경기장 공사를 앞두고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는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초하류 희귀식물을 이식할 것을 명시했다. 이식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원주지방환경청, 동계올림픽조직위, 산과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 녹색연합과 시공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23일 오전부터 공동조사가 진행됐다.
환경영향평가서의 '초본류 희귀식물 11종에 대한 이식계획'에 따르면 슬로프 조성 계획에 맞추어 산마늘, 금강제비꽃, 병풍쌈, 금강애기나리, 노랑무늬붓꽃, 강릉갈퀴, 산작약, 백작약 등을 이식해야 한다. 식물들은 가식장 내에 가적치된 후 슬로프 좌우의 유사 환경지 및 리프트 하단 훼손지에 이식될 예정이다.
조사단은 활강코스가 만들어질 7부 능선까지는 차량을 이용해 올랐고 이후 상층부는 수목을 헤치면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 관목과 초본류에 대한 리스트를 시공사에 요구했으나 시공사는 아래 사업소에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환경단체가 "자료도 없이 무슨 조사냐"라고 항의하며 한동안 실랑이가 오갔다.
산림생태를 전공한 농학박사이자 우이령사람들의 회장인 이병천 박사는 "지금 상태에서 조사를 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정확히 이식이 되었는지라도 확인해야겠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지난번 조사에서는 백작약, 신작약이 지천에 널렸는데 지금은 다 녹아서 없어졌다"며 "금강제비꽃은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세계적으로 강원도에만 서식하는 희귀식물이다"라고 강조했다.
짓밟힌 희귀 식물 곳곳에 눈에 띄어
일행이 조사를 시작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에 금강제비꽃과 등치 등이 발견됐다. 이병천 박사는 "희귀식물 이식이 눈가림 식으로 진행됐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여기저기에 벌목되어 널브러진 신갈나무를 끌어안으면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 수목"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유전자원으로 소중한 나무인데 이렇게 베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박사는 또 "신갈나무는 보통 50년 정도면 동공(구멍)이 생기는데 여기에서 발견되는 80~100년 정도 된 나무들은 동공 하나 없이 깨끗하다"라며 "참 대단하다"고 연신 감탄했다.
▲ 곳곳에 거대한 지름의 수목들이 베어져 있다.
▲ 폭 1m, 족히 2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갈나무를 발견하면서
가리왕산에 가장 거대한 신갈나무로 국내 최대직경으로 추정된다.
유종반 인천녹색연합 대표는 수령이 2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갈나무를 발견했다. 유 대표는 폭만 1m 가량 되어 보이는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리왕산에 가장 거대한 신갈나무로 국내 최대 지름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인근에서 이식대상인 분비나무를 찾아냈다. 유 대표는 "기후변화로 사라지고 있는 나무라 환경영향평가서 상 이식 가능 수목으로 분류되어 있다"며 "이식 가능한 어린 수목은 이식하도록 되어 있는데 베어져 버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유 대표는 현장을 감시하는 정주영 자연환경복원연구원 팀장을 찾아 분비나무가 베어진 이유를 물었다. 정 팀장이 "(분비나무는) 이식 수목이 아니어서 작업자가 베어 버린 것 같다"고 답하자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조사가 끝나고 이병천 박사는 "현장에 식생 전문가와 분류 전문가가 배치되었음에도 이식 가능한 식생들이 잘려나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박사는 "올림픽 이후에는 '복원'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급하게 일을 진행하면서 복원을 위한 절차를 하나도 진행하지 않았다"며 "기초 자료가 없어서 복원에 어려움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종반 대표는 "특별법에 의해서 진행하는 사업인데 가장 중요한 상부 노른자가 뭉개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는 "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는 희귀종 11종을 전량 이식하기로 되어 있다"며 "그런데 시공사 측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구역의 희귀종만 이식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어 "서로의 의견 차이 때문에 판단이 어렵다"며 "분비나무도 이식이 되어야 하는데 (시공사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수량만 이식하겠다고, 평가서 해석을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대표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무너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전욱찬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직원은 "초하류 희귀종은 토양까지 한꺼번에 떠서 옮겨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많다"며 "더 많은 이식은 주변에 살아가는 초하류의 식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대체부지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고 하소연했다.
▲ 조사단이 초하류인 금강제비꽃 이식지에서 현장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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