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인상적인 장면 18컷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 길지 않은 방한 일정을 마치고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말과 그가 보여준 행동은 한국 사회에 깊은 감동을 남겼습니다.

공항 도착 때부터 가슴에 손을 올리고 오열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

 

큰 종이에 작게 적은 교황의 서명,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차를 멈추고 입 맞춰 축복하는 모습,

그리고 떠날 때까지 그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은 '노란 리본'. 사진기자들이 풀단을 구성해서 기록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모습을 몇장의 사진으로 정리했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영접 나온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통역 신부의 소개를 받은 교황은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며 위로했다. 기사 관련 사진 ▲ 아주 작은 교황 서명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해 한국주교단과 만남을 가지고 있다. 주교단과의 만남후 강우일 주교가 교황의 아주 작은 방명록 서명을 보여주고 있다. < 기사 관련 사진 ▲ 교황 집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15일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리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눈물 흘리는 유가족에게 다가가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 입장하며,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노란리본' 단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미사 직전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직접 만난 교황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기사 관련 사진 ▲ 김대건 신부 생가에서 기도하는 교황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 생가가 있는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를 방문해 기도를 하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서울광장까지 가득 찬 시복미사 참가자들  16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시복미사 참석 인파가 광화문광장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득 메우고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 16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무대가 보이지 않는 참가자들을 위해 곳곳에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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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앞에 멈춰 선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차에서 내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농성중인 세월호참사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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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34일 유민아빠 손 잡은 교황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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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맞추며 축복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집전하기 전 카페레이드 도중 아이에게 입 맞추며 축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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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폰카 찍는 주교들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입장하자, 각국에서 온 주교들이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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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동네 희망의 집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후 
충북 음성군 꽃동네 '희망의 집'에서 오미현양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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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씨, 교황 집전 세례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17일 오전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교황이 방한해 세례 성사를 집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 씨는 단독으로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첫 한국인이되었다. 
이 씨의 세례명은 교황의 이름과 같은 '프란치스코'이다. 
이씨는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에 도착한 뒤 다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까지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했다. 
이 십자가는 교황이 로마 교황청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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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지손가락 추켜세운 교황 방한 4일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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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가방 든 교황 방한 4일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오전 충남 서산시 해미성지 소성당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교구 관계자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단 15명, 아시아 각국에서 온 추기경과 주교 5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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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지도자들 만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국내 12개 종교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지며,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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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위로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던 중 
한 할머니로부터 '희망나비' 배지를 선물받고 있다. 


"삶은 혼자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한중에 남긴 말말말

 

기사 관련 사진 ▲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_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서 (8월 14일) 기사 관련 사진 ▲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청와대 연설 (8월 14일) 기사 관련 사진 ▲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한국 주교단과의 만남 (8월 14일) 기사 관련 사진 ▲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8월 15일) 기사 관련 사진 ▲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길 빕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8월 15일) 기사 관련 사진 ▲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서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성모승천대축일 삼종기도 (8월 15일) 기사 관련 사진 ▲"보통의 사목자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사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교황 프란치스코_서강대 예수회 사제들과 만남 (8월 15일) 기사 관련 사진 ▲세월호 유족 이호진씨가 '교리를 배우지 않았는데 세례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자, "자격이 충분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주한 교황청대사관 (8월 17일) 기사 관련 사진 ▲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해미성지에서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 (8월 17일) 기사 관련 사진 ▲ "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_명동성당에서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 (8월 18일)

파파 프란치스코

 

파파 프란치스코는 250명을 훌쩍 넘는 역대 교종들 중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o of Assis, 1182~1226)

성인을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 최초의 교종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중세의 탁발승이다.

예수처럼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의 벗이 되어 산 이였다.



그는 원래 황제의 용사처럼 살고 싶었다.

하느님의 계시를 들은 후, 그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건네준 뒤 완전히 벌거벗은 채 복음의 외길로 나섰다.

그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때 첫 번째 추종자인 베르나르도가 하느님의 종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복음서의 다음 구절을 읽어 주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의 옷도 지니지 마라."

(한상봉,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32쪽)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동료와 형제들에게 개인으로든 공동으로든 어떤 종류의 재산도 소유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들의 삶은 오직 노동과 탁발(구걸)로 꾸려졌다. 돈을 가지거나 심지어는 돈에 손을 대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바란 것은 그야말로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사는 일이었다.

그런 성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인 프란치스코 교종이 수많은 한국인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부유한 교회는 세상의 적이자 하느님의 적이다. 목사나 신부는 교회 '대표'가 아니다.

'헌법' 같은 것에 '교인의 의무' 따위를 집어넣어 교회를 평화로운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혹시 교회를 세속의 공간처럼 만들어 자신들만의 부유함과 권세를 마음껏 누리기 위함은 아닌가.



교회는 가난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그곳은 부자보다 빈자가 넘쳐나야 한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이들이 아무 때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다.

그렇게 문턱이 낮아진 교회에 와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깊은 영적인 치유를 할 수 있을 때 하느님의 몸 돈 교회가 실현된다.



오늘날 교회는 어떤가. 교회 규모가 그 교회의 영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돼버렸다.

신도 수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식이다.

 

신도들로부터 돈을 그러모아 거대하게 '성전'을 짓고, 이곳저곳에 땅을 사들여 '센터'니 '회관'이니 하는 것들을 지어대는 일이

목사의 영적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돼버린 것 같다.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복음 사역의 길을 묻는 베르나르도에게 다음과 같은 구절도 들려 주었다.

나는 이 말을 '십일조는 교인의 의무'라고 부르대는 한국 기독교 '헌법주의자'들에게 전해 드리고 싶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위 책, 32쪽)

 

 

한국 교회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 땅의 종교는 세상 못지않게 물질적이다. 

하나님의 것인 교회를 사고팔고 세습하며,

교회의 규모 및 목자들의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세상보다 더 크고,

대형 교회의 재산 분쟁과 세습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분파도 세상 어떤 영역보다 많으며,

교회의 설립과 해체 주기가 자영업 창·폐업 못지않고,

 

목자 배출 체계 및 취업경쟁이 세상 대학보다 더 치열하며,

수입에 대한 세금조차 내지 않는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씀대로 교회가 먼저 물질에서 내려오라.

 

교회 재산 완전 헌납과 공유화, 교회 회계 공개, 세습 절대 금지, 목회자 급료 형평화,

목회자 세금 납부, 미자립·중소 교회와 대형 교회의 상생을 실행해

 

교회가 먼저 교리를 실천하여 물질과 차별이 아니라 구원과 상생의 길을 간다면

그때 세상도 교회로부터 배우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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