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학년때 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초등학교(사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시절 ‘달가스’라는 위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전쟁으로 황폐했던 덴마크에 나무를 심어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데 앞장 선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이런 위인이 나와야 한다고선생님은 설명하셨다.

당시는 우리 산이 매우 헐벗은 시절이었으므로, 울창한 숲의 아름다움과 숲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낮에도 숲속을 들어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주위가 온통 컴컴하다고 하셨던가?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선생님 말씀이니 거짓말은 아닐지라도 엄청 보탠 말씀이리라...

하기야 설명하신 위인들은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사람들이긴 했다.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던 어리고 꿈 많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미 임진왜란도 끝이 난지 오래였고 우리에게는 해방할 검둥이 노예도 없었으니

이순신 장군이나 링컨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달가스’라는 사람과 행적은 ‘케말 파샤’라는 또 다른 별난 이름의 위인과 함께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Quinault Rain Forest, 미국 Olympic 국립공원




안타깝게도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 명확하지 않아 당장은 출전을 밝힐 수 없지만,

나에게 영향을 준이야기가 하나 있는데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베리아 반도 어디쯤에선가 중년 남자 한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황무지에 도토리를 심었는데,

그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움막에 기거하면서 그 일에만 열중했단다.

어떤 인연에선가 그 지역을 찾게 된 어떤 청년이 그것을 보고,

혼자서 도토리를 심어봤자 표가 나지 않고 힘만 드니

일찌감치 포기하시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더란다.

그 아저씨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므로 자기는 혼자서라도

계속 도토리를 심을 것이라 했단다.


청년은 참 별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떠났고 세월은 유수처럼 흘렀다.
어느 날 그가 문득 도토리 아저씨를 기억해 낸 것은 어느새 20여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그 황무지를 찾았으나 그 아저씨가 살던 움막이나 황무지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황무지 대신 울창한 참나무 숲을 보았고,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어떤 할아버지 한 사람이도토리를 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실화로 기억하고 있다.

해피엔딩을 꿈꾸어서였는지 아니면 사실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참나무 -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야산에서 자라는 나무는 거의가 소나무 아니면 참나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도토리 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묻혀 싹이 나고, 그것이 자라면 커다란 나무가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진짜 나무, 정말 좋은 나무라는 뜻에서 참나무(oak tree)라 불러왔다.

그런데 사실은 참나무라는 나무는 없으며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을

모두 참나무라 부르고 이들의 열매는 종류와 관계없이 모두를 도토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도토리를 심으면 다양한 종류의 참나무 즉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을 얻게 된다.

이들은 모두 quercus라는 속(屬:genus)에 포함되며 많은 수의변종이 있는데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Quercus_species에만도150여 종이 수록되어 있다.




떡갈나무(Q.dentata)


어린 시절 ‘종속과목강문’하며 외웠던 동식물 분류체계에 대해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려운 학명이나 다양한 참나무를 구별하는 이론과 방법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자.


대신 참나무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이들은 잎새의 모양과 크기,

다 자란 나무의 키, 나무껍질의 형상, 도토리와 도토리 집의 모양 등에 따라

구별된다는 정도는 알아두면 도움이 되리라.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더 가지면, 어느 날 야산에서 만난 참나무 잎사귀의 모양으로

그것이 떡갈나무(Q.dentata) 계열인지 상수리나무(Q.acutissima) 계열인지도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고, 산행도 더 즐거울 것이다.


상수리나무(Q. acutissima)

미국이나 캐나다 지방을 여행하다보면 oak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지역이 유난히 많다.

예를 들면 oak creek, oak ridge, oak hill, oak valley, oak lodge... 등이 그것이다.

그런 지역에는 반드시 가로수나 공원수로 거대한 참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것이 인공 조림한 것으로 보여 무척이나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런데 수수께끼는 나무 크기에 비해 떨어진 도토리가 별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도토리든 피칸이든 열매를 주으려고 나무 밑을 서성이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가끔씩 동양계외지인들이 보일뿐인데말이다.

하기야 공원을 거닐면 청설모가 앞서며 함께 산보하자는 정도로 많으니

이들이 다 물어 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도토리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토리 묵을 연상하게 된다.

요즈음은 웰빙이다 별미다 해서 도토리 묵에 대한 인상들이 많이 바뀌었고

소비도 많이 늘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나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것은 잘 만들었다는 것일수록 알싸한 맛이 도는 탓도 있고,

먹는 음식으로 재주부리는 사람들이 많아 시판중인 도토리묵에

어떤 불순성분이 들어있는지 알기 어려운 탓도 있다.

그런데 가장 큰 원인은 꼭히 먹지 않아도 될 묵 한 사발에 필요한 도토리 개수가 엄청나다는데 있다.

뿐만이 아니다.

언젠가 열매를 따기 위해 수박만한 모난 돌로 나무를 찍고 흔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참나무 사진을 본 일이 있다.

이후 도토리묵만 보면 그 기사가 생각나 입맛이 싹 가셔 버린다.


참나무가 수난을 받는 것은 열매 탓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숲은 소나무와 소나무를 제외한 잡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나무는 한번 베면 새싹이 돋지 않는 반면 잡목의 대표격인 참나무는

한번 잘라도 등걸에서 다시 새 순이 돋는데다가 목질이 단단하고 연소시간이 길며,

숯은 소나무 숯에 비해 잘 부숴지지 않고 높은 열량을 내므로

신라시대부터 연료로 인기가 높았다 한다.

더욱이 우리가 애용하는 구들은 열효율이 낮은데다가,

국토는 좁고 인구밀도는 높은 상황에서 여러 천년을 나무로 땔감을 써 왔으니

번식력이좋다한들 웬만해서는 살아남기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어디서든 아름드리 참나무 성목을 보면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참나무 자연림



사람들은도토리를 보기가 무섭게, 아니 나무를 초죽음을 만들며 주워가고

다람쥐 배까지 채운 뒤 겨우겨우 살아남은 도토리가 작은 확률로 나무가 되면

다시 땔감으로 사용되었음에도 아직도우리의 산에 참나무가 있는 걸 보면

참나무는 정말 번식력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마을 인근에서 인공 조림된 참나무의 성목을 만날 수 있을까?




나무들이 이렇게 줄지어 있는 것은 이것이 인공조림이라는 증거다


근래 참나무 등걸이 양송이 재배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참나무가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참나무는 곧게 굵게 자란 녀석일수록 고급 목재로서의 가치가 커진다.

참나무 목재는 단단하며 색상은 조금 어두운 편이나 무늬가 아름다워

서구사람들에게는 고급 가구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볼 수 있는

굴참나무(Q. variabilis)는 특히 껍질의 용도가 크다.

굴참나무는 껍질층이 투터워 코르크로서의 용도가 다양하며,

특히 기후가 따뜻하여생육조건이좋은 지역에서 자란 나무의 외피는

고급 포도주의 마개용 코르크로 가공된다.

굴참나무 외피 - 코르크층

포도주용 코르크 마개는 2004년도 기준으로 포르투칼이 전세계 생산량 34만톤 중 54%인 18.5만톤을,

스페인이 8.8만톤으로 26%를 생산하고 있으며, 알제리아(6%), 이탈리아(5%), 모로코(4%), 튜니지아(3%),

불란서(1%)가 나머지를 생산하였다.

포르투칼 코르크협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굴참나무 외피수거는 엄정한 정부 감독 하에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지며 코르크층을 한번 채취한 나무는 10~15년후 채취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굴참나무 숲의 면적(총 226.9만 헥타르)은 포르투칼 32.5%, 스페인 22%, 알제리아 18%,

모로코 15%, 불란서 4.5%, 튜니지아 4.3%, 이탈리아 3.7%이므로

포르투칼은 자원을 무리하게 남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무를 심은지 25~30년이 지나면외피의 두께가 5cm 정도로 자라는데

이것으로부터male cork라 부르는 두텁고 단단한 양질의 코르크가 얻어진다.

첫번째 코르크 채취후 10~15년이 지나면다시 채취 가능한 수준의코르크 층을 형성하는데

이를 female cork라 하고 일반적으로male cork에 비하여수준이 낮다 한다.



수작업에 의한 코르크층의 수확


야적 상태의 굴참나무 외피

채취된 굴참나무 껍질은 12~18개월동안 야적 상태로 보관하는데,

이것은 코르크층을 산화시키고 수용성의탄닌성분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함이라 한다.


건조되어천연 숙성된 외피를끓는 물속에 넣고 한 시간 가량수용성 불순물을 제거하면

정제된 균질의 코르크 껍질이 얻어지는데,

이를 차곡차곡 쌓고 햇빛이 차단된 항온실에서 3-4주가량 보관하면

펀칭하기에 적합한 판판한 형태의 코르크 외피가 얻어진다.


외피의 상태나두께, 가공 기술에 따라 병마개의 품질은 7등급으로 분류되므로

이때는 생산자의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In 3000 BC, cork was already being used in fishing tackle in China,

Egypt, Babylon and Persia. In Italy remains dating from the 4th century BC

have been found that include artefacts such as floats,

stoppers for casks, women's footwear and roofing materials.

Also dating from that period is one of the first references to the cork oak,

by the Greek philosopher Theophrastus who, in his botanical treatises,

referred in wonder to “the ability that this tree has to renew its bark after it has been removed”.


from http://www.realcork.org/



굴참나무 중에서 크기나 나이, 생산성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것은

포르투칼 알렌테호 지역에 있는 Whistler라는 이름의 나무로서 나이가 200여살이라 한다.

이것은 1820년 처음으로 코르크를 생산한 이래 매 9년마다

10만병의 포도주 마개를 만들 수 있는 양질의 코르크를 생산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00년도에 인간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었다.

굴참나무 하나가 평균적으로 생산하는 량이 4,000개 정도라 하니,

어쩌면 자신의이름처럼휘파람이라도 불고 있을지도 모른다.





Whistler tree -채취년도가 보이시나요?


/은곡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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