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해바라기를 보기가 힘들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 그렇게 많던 해바라기는 다 어디 갔을까. 도심에서 비교적 많이 떨어진 농가의 텃밭에서도, 여간해선 보기 힘든 해바라기. 새벽 산책길에서 둥근 해의 미소처럼 만났다. 해바라기는 해를 좇아가면서 제 얼굴을 돌이켜 보며 피는 성찰의 꽃이며, 뜨거운 한 여름의 태양의 꽃이다.
'공자가어'에, '음란한 조정에서 녹을 타먹기에만 급급해서 벼슬을 하고 그 임금이 밝은 임금인지 어두운 임금인지를 헤아려 보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큰 형벌을 당하고, 이에 그의 지혜가 한송이 해바라기만도 못한 것이다'고 적혀 있다.
해바라기의 원산지는 미국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해서 '인디언의 태양의 꽃', '페루의 황금의 꽃'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상징하고, 해바라기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성격이 밝다고 한다.
우리의 속담에 '아무리 미워도 웃는 얼굴에는, 절대 침을 뱉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해바라기는 이렇게 환하게 웃는 사람의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꽃. 태양을 향해 피어나는 정열의 꽃이다. 그러나 해바라기를 '양지만 골라 출세가도를 순조롭게 걷는 자와 같다'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든 꽃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해바라기의 꺽이지 않는 의지, 그리고 활활 불붙는 듯한 정열을 사랑한다. 해바라기는 태양의 충신에 다름 아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향하는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하는 것처럼 해바라기는 포기를 모르는 꽃이기도 하다.
사람의 인생은 어쩔 수 없는 해바라기 인생이다. 해바라기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한번은 태양을 잃고, 어둠과 고통 속을 헤맨다. 나도 한때 사업실패로 자살을 꿈꿀 정도로, 심각한 절망의 늪을 헤매였다. 그때 종종 아버지 산소를 찾곤 했다. 아버지 잠든 여름 산언덕배기의 텃밭에 핀 해바라기 한떨기가 마치 아버지의 영혼처럼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에게 태양이었다면, 내 어린 아들에게는 내가 태양이다. 절대 내가 빛을 잃어서는 안돼."
나도 모르게 어두운 가슴에서 샘처럼 솟구치는 용기를 얻게 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후 꼭 내게는 아버지의 미소처럼 다가오기도 하는 해바라기 꽃이다. 내겐 꽃 이상의 용기를 준 고마운 꽃이기도 하다.
해바라기는 일명, '황규' 또는 '경규'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의 '고려사'에 '황규'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해바라기는 벌써 칠팔백 년 넘는, 가히 천년의 꽃이다. 아폴론을 사랑하다가 실연한, 크리스티가 죽어 이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해바라기.
가만히 생각하면, 태양이 없다면 우리들은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랑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람 사이 웃는 미소 없이는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을 터이다. 이 무더운 찜통 더위에 해바라기 미소처럼 살자고, 내 안의 나에게 기도처럼 다짐하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