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월출산 산행기

0 산명 : 영암 월출산(808.7m)
0 위치 : 전남 영암군 영암읍 군서면, 강진군 성전면
0 일시 : 2006. 12. 9~12. 10
0 코스 : 주차장-천황사-구름다리-사자봉-통천문-천황봉-구정봉-미왕재-도갑사
0 시간 : 7시간 /쾌청




(산행시간)

05:40 개신리 주차장
06:00 천황사지
07:00 구름다리(천황봉 1.8km, 주차장 1.9km)
07:20 사자봉
08:10 바람골 갈림길

08:25 통천문
08:35 천황봉 /08:50 출발
08:55 안내판 (도갑사 5.3km, 구정봉 1.4km)
09:30 남근바위
09:35 바람재 (도갑사 4.5km, 경포대 2.5km)
09:50 금수굴
10:00 구정봉 (도갑사 4.1km, 마애불 0.6km)

10:15 헬기장/점심/10:45 출발
11:30 미왕재
12:20 도선국사비각
12:35 미륵전 /용수폭포
12:45 도갑사 주차장

(들어가기)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호남정맥이 남해로 빠져 나가기 전
크게 용틀임을 하고 멈춰선 곳이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월출산.
영산강과 서해를 바라보며 영암읍내의 기름진 평야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다.

남성적인 웅장함을 갖춘 북쪽의 가파른 돌산과
여성적인 섬세함을 갖춘 완만한 남쪽산이 조화를 이뤄
지리산, 변산, 천관산, 내장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고 불리어졌다.

‘월(月)’자로 시작되는 산치고 험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월출산 또한 충북의 월악산 못지않게 그 산세가 험해
호남 산악인들에게는 ‘암벽의 메카’로 사랑받고 있다.

지금의 영암(靈岩)읍도 동국여지승람에 쓰여진 ‘운무봉과
도갑 및 용암 아래에 있던 3개의 신령스런 바위와 관련된 전설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천황봉을 중심으로 산 전체가 수석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의 왕인박사와 신라말 도선국사의 탄생지이기도 하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매월당 김시습은 「남쪽에 제일 가는 그림같은 산이 있으니,
청천에 솟아있는 월출산이 여기로다」라고 읊었다.
윤선도는 「산중신곡」에서 구름 걸친 월출산을 「선경」 으로 표현했다.
월출산의 최고봉인 정상에 오르면 동시에 3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있다.

천황봉 동쪽에는 천황사, 서쪽에는 도갑사, 남쪽에는 무위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왕인박사를 모신 '성기동'과
구정봉 기슭에 국내 최대 높이의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또한 천황사 뒤쪽으로 암봉과 암봉을 잇는
높이 120m. 길이 52m의 구름다리는 월출산의 명물이다.

(산행기)

천황사 주차장
선잠을 깨우며 어둠 속에서 버스를 내리고
주차장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방향조차 어두운 도로
랜턴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바닥은 자연석이 깔린 대나무 숲길이다

천황사
천황사는 허물어지고 새로운 불사가 한창이다
통나무 계단, 그리고 산죽이 가득한 길을지나

자연석 계단으로 된 된비알
오르다 쉬기를 반복하면서 철계단을 오른다

우측으로 굽어지는 작은 오르막에서
바람이 부는 능선을 피해
일출을 기다리며 산행을 멈춘다

구름다리
팔각정에 부는 초겨울의 능선바람
매서운 바람골의 삭풍에 놀라 옷깃을 세우고..

암봉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철제 구름다리
흔들다리는 보수작업으로 넓어지고 튼튼해지고..

발아래 계곡은 온통 어둠속이지만
건너 간다.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한다
웃고 떠들고.. 건넜다는 안도감.

가로막는 절벽 앞
급경사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이 다소 미끄러운데
오른쪽은 장군봉 능선이 정상을 향해 달리고,

먼산은 새벽이 오는 황금빛. 이어서 일출이다
바위능선의 매서운 바람에 쫒겨 산비탈을 돈다

사자봉
지그재그로 한참을 이어지는 철사다리를 오르면
다시 급경사 코스인 가파른 철계단,
사자봉의 한켠에 선다.

동쪽으로 보이는 천황집단시설지구와 반듯이 정리된 들판,
사자저수지에 담겨진 물은 푸름을 넘어 청아함 그 자체.

장군봉
북쪽으로 보이는 장군봉과 연결된 거대한 바위능선
서쪽으로 보이는 천황봉 정상,
거센 바람이 잠시 평온함을 이어주고..

잠시 하산을 하듯이 내림길을 하다가
다시 천황봉을 향한 오름길을 만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들뜨게 하며 힘들게 산을 오르는지..

바람골 갈림길
경포대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지점
주변 산들과 자연의 기기묘묘함에 발길을 멈추게 하고

바람폭포 쪽에서 오르는 길과 합쳐지는 지점
급경사 철계단을 쉬어가며 오른다

통천문
계단을 세며가도 버겁도록 힘이 부친다.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가 왼쪽
암봉을 올라서니 월출산 최고봉

천황봉
평평한 바위 봉우리에 거대한 정상석
황금빛 영암벌판과 남해안 강진만의 아름다운 남도경관
사방으로 발을 뻗은 능선과 계곡이 병풍처럼 아름답고,

멀리 보이는 서북쪽으로는
영산강의 물줄기가 가슴을 적시는 풍경을 연출하고..

전설에 의하면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 세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바위들의 기운으로 산 아래 고을에 큰 인물이 난다고 하여
중국 사람들이 몰래 그 바위들을 밀어뜨렸다고 하는데
그 중 한 바위가 다시 기어 올라갔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신령스러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산 아래 마을을 '영암'(靈巖)이라고 했다.

경포대갈림길
살짝 얼어버린 암릉을 내려가는 동안
왼쪽 능선으로 수없이 엉켜있는 바위조각 전시장 광암터,

구름다리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매봉과 사자봉 능선의 장엄함에
작은 바위능선에서 휴식을 하며 숨을 고른다

바람재
다시 오르막길의 시작
구정봉이 손에 잡힐듯 하지만 그것은 바램일 뿐이다.
멀리 구정봉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휴식

조금씩 지쳐가는 발걸음을 쉬고
거대한 바위틈새로 남근석을 지나고
안부에서 베틀굴로 향하는 비알을 오른다

금수굴(베틀굴)
향로봉을 우회하는 좁은 길
거대한 바위아래로 베틀굴이 있다

조물주의 장난이 극치에 이르러
이런 아름다운 걸작이 남겨졌는지
들여다보고.. 신기해하고..

구정봉(705m)
좁은 굴을 돌아 오르면
발 아래는 온통 바위 전시장. 마치 부채살처럼 펼쳐진...
아홉마리의 용이 이곳에서 살았다는데...
비가 내리지 않아도 마르지 않는 바위 샘

향로봉(제2봉, 743.1m)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절묘한 모습에 피곤을 잊는다

헬기장
국보 제114호 '마애여래좌상' 갈림길
예전에 다녀온 기억으로 되돌아선다
능선위 헬기장 한켠에서 점심을 채린다

<월출산마애여래좌상>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얼마되지 않은 거리에 완숙한 모양을 갖추지 못한
돌탑이 아름다움을 더 해 준다.
돌탑과 마애불은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하고 있어 보인다.

미왕재
시들어버린 억새밭
그런대로 초겨울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도갑사로 내려가는 길은 군데군데 너덜지대
급경사 길은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동백숲이 군데군데 봄을 기다리는 산길
하산길은 여유롭기만 한데..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쉬지 않고 내려오니
발바닥과 관절이 난리를 한다.

도선국사 비각
잘 지어진 비각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대한 거북 한마리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

비의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동·서를 향하여 머리를 쳐들고 있고
비신 측면의 조각 역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크고 미끈한 거북이가 비석을 지고 고개를 틀어 절 있는 쪽을 보고 있다.

두툼한 등껍질 위에 가장자리가 말린 넓은 연잎이 조각되어 비신을 받치고 있다.
이처럼 구름이나 연꽃무늬가 아니고 연잎으로 비신을 받친 것은
조선시대양식으로 몸통이나 머리에 비하면 발 부분은 빈약하다

<도선국사>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활동한 승려로,
속성은 김(金), 호는 옥룡자(玉龍子)이며 전라남도 영암 출생이다.
15세에 지리산 화엄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중국에 가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세웠다.
그후 전국 명산대찰을 두루 섭렵하고 나서 백계산 옥룡사에서 평생을 마쳤다.

그의 음양지리설·풍수사상은
고려 ·조선 시대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수미선사는 조선 전기의 승려로 속성은 최, 본관은 고랑주, 호는 묘각(妙覺)이다.
13세에 출가하여 영암 월출산의 도갑사에서 수행하고 20세 때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속리산 법주사에서 신미(信眉)와 함께 수도에 정진하였으며,
1457년(세조 3)에 도갑사로 들어가 절을 중수하였으며, 1458년 왕사(王師)가 되었다.

미륵전 석조여래좌상
고려시대의 화강암 불상. 보물 제89호. 높이 3m.
같은 돌에다 불상과 광배를 조각하였다.
나발에 육계가 크며 타원형 얼굴이다.
도톰한 눈두덩, 넓적한 코, 덤덤한 입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투박한 귀는 짧고, 목은 길지만 삼도(三道)는 형식화되었다.
어깨는 넓지만 부자연스러우며 몸의 굴곡도 단순하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팔도 생동감이 없고 조각기법도 둔하다.
법의는 옷주름 몇 가닥을 투박한 선으로 표현하였을 뿐이다.
광배는 주형(舟形)이고 신라의 양식과 달리 곡선미를 찾아볼 수 없다.

용수폭포
도갑사 직전 작은 아취형 다리아래에서
가뭄으로 겨우 물길을 이어가는 폭포가 있다

도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국사가 창건하였다.
원래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을 문수사에서 보낸 도선국사가
나중에 그 터에 절을 다시 지은 후 도갑사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전성기를 누렸으며, 조선시대인 1457년(세조 3)에
수미(守眉)대사와 신미(信眉)대사가 중건하였다.
6·25전쟁과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불탔으며,
현재의 대웅전은 198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오층석탑>
고려시대의 석탑. 전남유형문화재 제151호
이 석탑은 5층의 탑신과 옥개석을 갖추었고
상륜부에 노반이 있고 꼭대기에는 보주를 얹었다.
고려시대의 석탑 양식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탑.

석조와 해탈문
석조란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쓰거나 곡물을 씻는 데 쓰는 돌그릇을 말한다.
도갑사의 대웅전 앞뜰에 있는 300년 된 초대형의 고풍스런 석조는
화강암으로 만든 기다란 네모 모양의 통나무배 모양으로
네 귀의 모서리를 죽였으며 거죽의 밑바닥도 반원형으로 돌려 처리하였다.

승려들이 마실 물을 담아 두는 석조의 안쪽 밑바닥에는
물을 뺄 수 있는 작은 배수구가 있다.
‘강희 21년 임술’이라는 글씨로 1682년(숙종8)에 제작된 석조임을 알 수 있다.
크기는 길이 467cm, 폭 116cm, 높이 85cm에 이르는 17세기 말의 거대한 석조이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안쪽에는 ‘해탈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도갑사 주차장
해탈문을 나서고 일주문
그리고 다리를 건너면
팽나무 한그루가 세월을 지니고 있다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만끽한 산행
무박으로 지친 월출산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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