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산명 : 합천 가야산(1,430m)
0 위치 : 경남 합천군 가야면, 경북 성주군 수륜면, 가천면
0 코스 : 백운동 매표소~백운1-4교~백운암지~서성재~성터~칠불봉~상왕봉
~석조여래입상~헬기장~옛가야산대피소~토신골~해인사~주차장
0 일자 : 2007. 4. 22(일)
0 시간 : 6시간30분 /흐림
<산행시간>
08:20 백운동 주차장
08:30 백운동 매표소
08:40 백운교
08:55 백운1교,2,3,4교
09:20 동성재 갈림길
/상왕봉2.7km, 칠불봉 2.5km,백운동주차장 1.9km
09:45 백운암지
/상왕봉2.0km, 칠불봉 1.8km,백운동주차장 2.6km
10:00 서성재 /휴식
/상왕봉1.4km, 칠불봉 1.2km,백운동주차장 3.2km
10:20 가야산 성터
10:40 전망대
11:00 이정표
/상왕봉0.5km, 칠불봉 0.3km,백운동주차장 4.1km
11:20 칠불봉
/상왕봉0.2km,
11:30 안부
11:40 상왕봉
11:45 안부/점심후 12:15출발
12:20 능선 갈림길
/상왕봉 0.2km, 해인사3.8km
12:35 봉천대
12:40 석조여래입상
12:50 헬기장
13:05 옛가야산대피소
13:40 토신골 갈림길
13:50 용탑선원
14:00 해인사
14:50 주차장
<들어가기>
백두대간의 황악산과 덕유산 사이에서 가지를 치면서 솟구친 산이
바로 수도산과 해인사를 품에 안은 가야산이다.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이어저 있다.
옛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가야산 남쪽자락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14개의 암자와 75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해인사는 국내 3보사찰인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산형은 천하에 절승 중 제일이다'라고 극찬하였으며,
오대산, 소백산과 더불어 왜적의 전화를 입지 않아,
삼재(화재,수재,풍재)가 들지않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사명대사께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신 곳이다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흐르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가운데 으뜸이라 했으며
신라말 난세를 비관하여 그 한을 달래기 위하여 산문에 들어가 선화(仙化)한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농산정, 학사대 등의 유적과
1995년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국 불교의 상징인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을 보유하고 있다.
<산행기>
백운동 매표소
주차장 끝 포장도로.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이 나오고
이어서 등산 안내판이 나타난다. 용기골이다.
백운교
다리를 건너 왼쪽이 들머리
엄홍길 대장이 추천하는 16좌 대장정 행사장.
엄홍길씨의 로체샤르 성공 등정을 기원하며
4월 22일부터 11월까지 7개월여 동안 엄홍길 대장이 추천한
‘국내 명산 16곳 정상 오르기’ 이벤트를 벌인다
16개 산을 모두 오른 완등자들을 위해
고어텍스 재킷과 엄홍길씨 전용 등산화등과 완등 인증서도 준다
일단 신청을 하고 접수증을 받는다
백운1, 2, 3, 4교
등산로는 넓고 돌로 잘 다듬어져 있다.
백운1교에서 오솔길을 산책하듯이 30분쯤 올라가면
옛 백운동대피소
‘영남의 영산 가야산’이라고 적힌 커다란 안내판이 있다.
/칠불봉 2.5㎞, 상왕봉 2.7㎞
백운암지
통일신라때 이곳 용기골에 해인사에 버금가는 금당사라는 절과
이에 딸린 100여개의 암자가 있었는데
백운암도 그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고 적혀있다.
비가 오려는지 오를수록 더위로 헉헉거리고..
서성재
이어지는 계단 그리고 산죽이 덮인 길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얼레지 꽃이 한창이다
너른 평지로 칠불봉이 보이는 사거리 능선.
왼쪽은 만물상능선 및 공룡능선 가는 길이고
정면은 마애불입상으로 가는 방향이지만 폐쇄돼 있다.
잠시 쉬고 오른쪽 산죽사이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칠불봉의 우람한 암봉이 눈앞에 다가온다.
가야산성터
나무 계단을 지나 시작되는너덜길
가야산성터. 이제 상왕봉까지 1㎞.
전망대
가야산성터를 지나 왼쪽
탁 트인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정면 조그만 정상석이 튀어나온 오도산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황매산이, 오른쪽으로 별유산 그 뒤로는 안개가 가득하다.
철계단
너덜길을 지나 철계단.
암릉에 도취되어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계단길
이어지는 암릉과 암릉 사이를
집채만한 바위를 에돌아 오르면 석화성의 진면목이 기다리고 있다.
칠불봉(1,433m)
올라서면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거대한 암릉
끝간데없이 시원스럽다.
왼쪽 만물상능선, 오른쪽 공룡능선.
불꽃같은 석화성(石火星)의 진면목에 넋을 잃는다.
정말 돌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
조선 숙종때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가야산은 끝이 날카로운 바위들이 늘어선 모양새가
흡사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하여
가야산을 석화성(石火星)의 절정이라고 극찬하였다는데.
정견모주(正見母主)라는 산신이 머무는 영남의 영산.
이 산에는 옛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荒玉)과 결혼해
왕자 10여 명을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居登)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세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7왕자는 허 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 후 깨달아 생불이 됐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됐다.
칠불봉을 뒤로 한 채 우두봉 정상을 향한다,
/상왕봉 0.05km, 칠불봉 0.15km, 백운동 매표소 4.25km
상왕봉(1,430m 우두봉)
이정표에서 좁은 철계단을 올라서면 우두봉 정상이다.
칠불봉과 주봉인 상왕봉 사이가 도경계.
칠불봉은 경북 성주,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있다.
상왕은 ‘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의미하며
우두봉은 정상의 바위가 소의 머리를 닮아 붙여졌다.
서쪽으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과
그 밑으로 금원 기백산 능선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저 멀리 민주지산과 황악산이 하얗게 변해있다.
서북방향의 수도산~가야산 주능선이 뚜렷하다.
수도산→단지봉→좌일곡령→목통령→분계령→두리봉→
상왕봉→칠불봉→서성재→백운동까지의 1급 종주코스,
하산은 아래로 내려서는 급경사 길
상왕봉을 내려와 안부에서 점심
돌아나가면 전망좋은 넓은 암반
이어서 시작되는 급경사 너덜길
샘터를 지나
바위협곡을 빠져 나오면
봉천대
멀리 지리산 연봉이 천애에 아물거린다는
봉천대는 넓은 반석으로 된 대암(大岩)
암릉사이를 빠져나와 계단 끝에서 왼쪽으로
석조여래입상
보물 264호. 석불입상이다
광배와 대좌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목이 절단되고 어깨와 두 팔이 모두 깨졌으며 발도 없어졌다.
이 불상은 신체 비례의 불균형, 평면적이고 형식화된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양식을 보여준다.
헬기장
넓은 공터
우측으로 산죽이 가득한 길
옛 가야산대피소
대피소 자리에는 구상나무를 심어 쉼터를 조성했다.
토신골
가야산의 또 하나의 명물인 산죽밭
그 사이로 평탄한 외줄기 길이 뚜렸하다.
갈림길
극락골 마애불입상 가는 길은
휴식년제로 막혀있어 직진한다.
이제부턴 본격 하산길.
다소 지루한 계곡과 나란히 걷는다.
해인사
지붕이 보이는 계곡 끝에서
산행을 접는다
해인사, 그리고 아쉬움..
용탑선원
해인사의 말사 중 하나.
3.1운동때 33인중 한 분인 용성스님의 사리를 보존하기위해
1945년에 지어졌으며 용탑원이라고도 한다.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 /고암대종사 탑비와 고암당
조선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석종형 부도
석장비는 현존하는 사명대사비 중 가장 먼저 건립되었고,
비문에 사명대사의 석장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부도와 석장비는 본래 세트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외나무다리
계곡을 건너는 커다란 통나무다리
저승가면 건너봤느냐고 묻는다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화장실 그리고 해인사로 가는 길이다
학사대 지팡이 나무.
최치원 선생이 후학들의 학업을 걱정하며
이 나무에 잎이 나서 질 때가 내가 죽은 때이니
그때까지 학업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지팡이를 꽂았는데
살아서 잎이나 지금까지 1200년을 살고 있다는데...
장경각
법당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장경각을 마주할 수 있다.
빙 둘러 ㅁ자 구조로 지어진 장경각
안에는 긴 세월을 지내온 목판 대장경이
마치 서고에 진열된 장서처럼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숯과 소금을 이용하여 오랜 세월 동안 별다른 손상 없이 대장경을 보관해 냈던
장경판전은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세계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다.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때 대장도감에서 새긴 목판으로
이 판전에는 81,258장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거제도, 완도 등지에서 실어온 자작나무나 후박나무로 만든 대장경판은
오늘날까지도 상하거나 뒤틀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먼저, 원목을 3년 동안 바닷물 속에 담가둔다.
이 원목을 꺼내서 판을 짜고, 이 판을 소금물에 삶는다.
삶은 판을 또다시 3년 동안 그늘에서 말리고,
그 판에 글자를 한자한자 새긴다.
다 새긴 판에 옻칠을 하면 끝난다.
6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고려팔만대장경이다.
이 장경각과 고려대장경판은 1995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인사고려각판
고려시대의 불교경전과 유명한 승려들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해인사 고려각판은 대장경판과는 달리 사찰이나 지방관청에서 새긴 것이며
동·서 사간판전에 모두 54종 2,835판이 보관되어 있다.
대적광전
법보사찰 해인사의 중심 법당
본래 성주군 금당사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1897년 범운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봉안되었으며, 원래부터 있던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지장보살·보현보살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구광루
일반 대중을 위한 예불장소였으나 현재는 기념품점과 영상실이 있다
앞 마당에 노란 벽돌로 그어진 특이한 도안이 있는데
이것이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해인도'이며
누구든 합장을 하고 한바퀴 돌면 공덕을 얻는단다.
불자들이 노란 금을 따라 돌고 있다.
고사목
1,200년전 신라의 애장왕이 왕후의 병치료를 해 준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해인사를 창건할 당시 기념으로 심었다는 나무가
지금은 죽어 덧없는 세월을 회상하듯 검게 홀로 서 있다
성보 박불관
예전에 해인 초등학교 자리에 학교가 없어지고
어느새 현대판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영지
가야산의 칠불봉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
가야국의 김수로왕 아들 일곱이 가야산에 성불하러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자식을 보러 왔다가 못 만나고
영지에 비친 아들의 그림자만 보고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원경왕사 비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은 김부일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해인사 길상탑
진성여왕대 해인사부근의 전란속에서 사망한 승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본래 탑내에 탑지가 있었는데 도굴 당한 것을 1966년에 되찾음으로써
건탑과 관련된 여러 사실이 알려졌다.
성철대종사 부도탑
디자인이 아주 특이해서 살펴보았더니
환경대상인가 뭣인가 하는 상을 받은 작품이란다.
아마도 살아생전 이곳을 성철 스님이 보셨다면
가야산이 떠나도록 쩌렁쩌렁한 큰소리로
이놈들아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넓은 장소를
그리고 이렇게 치장을 했냐고 할 것 같다
성철 스님의 누더기 법복이 생각난다.
살아생전 그렇게 검소하게 사셨는데
스님과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경과 환경이다.
바로 아래 자운율사 사리탑이 있다
주차장
올라가는 길이 많이 변했다.
아스팔트가 깔려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고
보행자용 도로가 새로 생겼다.
길옆으로 보이는 계곡이 이제는 온갖 고생은 혼자 다한 듯
더러워지고 훼손되어 있어 측은한 마음뿐.
그때는 해인사가 이렇지 않았는데...
차량으로 가득한 비좁은 주차장에서 버스에 오른다
홍류동 계곡
천년 노송과 활엽수가 멋스럽게 어우러진 홍류동 계곡
십리나 이어지는 구불구불 포장도로 곁으로 물소리가 넘쳐날 듯 힘차다.
오랫만에 찾은 해인사
무척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아쉬움과 허전함을 뒤로 안은채
산행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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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매표소에서 해인사 쪽으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산행을 하면서
등산안내도와 정상석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한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익히 알려진대로 가야산의 최고봉은 상왕봉으로 해발 1430m.
하지만 경북 성주군 백운동 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하나같이 칠불봉이 1433m로 가장 높다고 적혀 있다.
칠불봉 정상석 아래 적힌 ‘가야산(칠불봉) 전설’이나 옛 백운동 대피소 앞의 ‘영남의 영산 가야산’ 등
산안내도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가야산에서 가장 높은’이라는 수식어가 칠불봉 앞에 따라 다닌다.
상왕봉은 경남 합천군에, 칠불봉은 경북 성주군에 위치해 있다.
두 봉우리 간격인 200m 사이에 도 경계선이 지나간다.
성주군의 이같은 노력은 바로 합천 가야산이 아니라
성주 가야산으로 널리 알려지기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가야산 면적의 61% 정도가 성주군에 포함돼 있어
칠불봉이 상왕봉보다 높다는 사실만 인정되면 확실하게 성주 가야산으로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산의 면적이 얼마나 포함돼 있느냐 보다는 주봉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산 앞에 그 지방의 이름이 붙는다.
하지만 성주군의 노력은 몇 가지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성주군의 주장대로 해발고도가 3m나 낮다는 상왕봉 정상의 정상석은
답사자들은 잘 알겠지만 상왕봉의 최고점이 아니라 최고점 아래 평평한 곳에 설치돼 있다.
실제 최고점과 정상석이 놓인 두 지점간의 간격이 3m 이상이라는 것이 목격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또 한가지. 국토지리정보원의 유권해석. 이에 따르면 성주군이 주장하는
칠불봉의 높이인 1433m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때문에 현재로선 가야산 주봉은 상왕봉이라는 것.
한 관계자는 “경상도의 지형도 수정작업이 실시되는 내년에 반드시 재측량을 해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산꾼들은 성주군의 노력을 높이 사고 있다.
성주쪽의 등산로가 합천쪽의 그것보다 훨씬 잘 정비돼 있기 때문이다.
0 위치 : 경남 합천군 가야면, 경북 성주군 수륜면, 가천면
0 코스 : 백운동 매표소~백운1-4교~백운암지~서성재~성터~칠불봉~상왕봉
~석조여래입상~헬기장~옛가야산대피소~토신골~해인사~주차장
0 일자 : 2007. 4. 22(일)
0 시간 : 6시간30분 /흐림
<산행시간>
08:20 백운동 주차장
08:30 백운동 매표소
08:40 백운교
08:55 백운1교,2,3,4교
09:20 동성재 갈림길
/상왕봉2.7km, 칠불봉 2.5km,백운동주차장 1.9km
09:45 백운암지
/상왕봉2.0km, 칠불봉 1.8km,백운동주차장 2.6km
10:00 서성재 /휴식
/상왕봉1.4km, 칠불봉 1.2km,백운동주차장 3.2km
10:20 가야산 성터
10:40 전망대
11:00 이정표
/상왕봉0.5km, 칠불봉 0.3km,백운동주차장 4.1km
11:20 칠불봉
/상왕봉0.2km,
11:30 안부
11:40 상왕봉
11:45 안부/점심후 12:15출발
12:20 능선 갈림길
/상왕봉 0.2km, 해인사3.8km
12:35 봉천대
12:40 석조여래입상
12:50 헬기장
13:05 옛가야산대피소
13:40 토신골 갈림길
13:50 용탑선원
14:00 해인사
14:50 주차장
<들어가기>
백두대간의 황악산과 덕유산 사이에서 가지를 치면서 솟구친 산이
바로 수도산과 해인사를 품에 안은 가야산이다.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이어저 있다.
옛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가야산 남쪽자락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14개의 암자와 75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해인사는 국내 3보사찰인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산형은 천하에 절승 중 제일이다'라고 극찬하였으며,
오대산, 소백산과 더불어 왜적의 전화를 입지 않아,
삼재(화재,수재,풍재)가 들지않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사명대사께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신 곳이다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흐르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가운데 으뜸이라 했으며
신라말 난세를 비관하여 그 한을 달래기 위하여 산문에 들어가 선화(仙化)한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농산정, 학사대 등의 유적과
1995년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국 불교의 상징인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을 보유하고 있다.
<산행기>
백운동 매표소
주차장 끝 포장도로.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이 나오고
이어서 등산 안내판이 나타난다. 용기골이다.
백운교
다리를 건너 왼쪽이 들머리
엄홍길 대장이 추천하는 16좌 대장정 행사장.
엄홍길씨의 로체샤르 성공 등정을 기원하며
4월 22일부터 11월까지 7개월여 동안 엄홍길 대장이 추천한
‘국내 명산 16곳 정상 오르기’ 이벤트를 벌인다
16개 산을 모두 오른 완등자들을 위해
고어텍스 재킷과 엄홍길씨 전용 등산화등과 완등 인증서도 준다
일단 신청을 하고 접수증을 받는다
백운1, 2, 3, 4교
등산로는 넓고 돌로 잘 다듬어져 있다.
백운1교에서 오솔길을 산책하듯이 30분쯤 올라가면
옛 백운동대피소
‘영남의 영산 가야산’이라고 적힌 커다란 안내판이 있다.
/칠불봉 2.5㎞, 상왕봉 2.7㎞
백운암지
통일신라때 이곳 용기골에 해인사에 버금가는 금당사라는 절과
이에 딸린 100여개의 암자가 있었는데
백운암도 그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고 적혀있다.
비가 오려는지 오를수록 더위로 헉헉거리고..
서성재
이어지는 계단 그리고 산죽이 덮인 길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얼레지 꽃이 한창이다
너른 평지로 칠불봉이 보이는 사거리 능선.
왼쪽은 만물상능선 및 공룡능선 가는 길이고
정면은 마애불입상으로 가는 방향이지만 폐쇄돼 있다.
잠시 쉬고 오른쪽 산죽사이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칠불봉의 우람한 암봉이 눈앞에 다가온다.
가야산성터
나무 계단을 지나 시작되는너덜길
가야산성터. 이제 상왕봉까지 1㎞.
전망대
가야산성터를 지나 왼쪽
탁 트인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정면 조그만 정상석이 튀어나온 오도산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황매산이, 오른쪽으로 별유산 그 뒤로는 안개가 가득하다.
철계단
너덜길을 지나 철계단.
암릉에 도취되어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계단길
이어지는 암릉과 암릉 사이를
집채만한 바위를 에돌아 오르면 석화성의 진면목이 기다리고 있다.
칠불봉(1,433m)
올라서면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거대한 암릉
끝간데없이 시원스럽다.
왼쪽 만물상능선, 오른쪽 공룡능선.
불꽃같은 석화성(石火星)의 진면목에 넋을 잃는다.
정말 돌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
조선 숙종때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가야산은 끝이 날카로운 바위들이 늘어선 모양새가
흡사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하여
가야산을 석화성(石火星)의 절정이라고 극찬하였다는데.
정견모주(正見母主)라는 산신이 머무는 영남의 영산.
이 산에는 옛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荒玉)과 결혼해
왕자 10여 명을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居登)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세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7왕자는 허 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 후 깨달아 생불이 됐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됐다.
칠불봉을 뒤로 한 채 우두봉 정상을 향한다,
/상왕봉 0.05km, 칠불봉 0.15km, 백운동 매표소 4.25km
상왕봉(1,430m 우두봉)
이정표에서 좁은 철계단을 올라서면 우두봉 정상이다.
칠불봉과 주봉인 상왕봉 사이가 도경계.
칠불봉은 경북 성주,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있다.
상왕은 ‘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의미하며
우두봉은 정상의 바위가 소의 머리를 닮아 붙여졌다.
서쪽으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과
그 밑으로 금원 기백산 능선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저 멀리 민주지산과 황악산이 하얗게 변해있다.
서북방향의 수도산~가야산 주능선이 뚜렷하다.
수도산→단지봉→좌일곡령→목통령→분계령→두리봉→
상왕봉→칠불봉→서성재→백운동까지의 1급 종주코스,
하산은 아래로 내려서는 급경사 길
상왕봉을 내려와 안부에서 점심
돌아나가면 전망좋은 넓은 암반
이어서 시작되는 급경사 너덜길
샘터를 지나
바위협곡을 빠져 나오면
봉천대
멀리 지리산 연봉이 천애에 아물거린다는
봉천대는 넓은 반석으로 된 대암(大岩)
암릉사이를 빠져나와 계단 끝에서 왼쪽으로
석조여래입상
보물 264호. 석불입상이다
광배와 대좌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목이 절단되고 어깨와 두 팔이 모두 깨졌으며 발도 없어졌다.
이 불상은 신체 비례의 불균형, 평면적이고 형식화된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양식을 보여준다.
헬기장
넓은 공터
우측으로 산죽이 가득한 길
옛 가야산대피소
대피소 자리에는 구상나무를 심어 쉼터를 조성했다.
토신골
가야산의 또 하나의 명물인 산죽밭
그 사이로 평탄한 외줄기 길이 뚜렸하다.
갈림길
극락골 마애불입상 가는 길은
휴식년제로 막혀있어 직진한다.
이제부턴 본격 하산길.
다소 지루한 계곡과 나란히 걷는다.
해인사
지붕이 보이는 계곡 끝에서
산행을 접는다
해인사, 그리고 아쉬움..
용탑선원
해인사의 말사 중 하나.
3.1운동때 33인중 한 분인 용성스님의 사리를 보존하기위해
1945년에 지어졌으며 용탑원이라고도 한다.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 /고암대종사 탑비와 고암당
조선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석종형 부도
석장비는 현존하는 사명대사비 중 가장 먼저 건립되었고,
비문에 사명대사의 석장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부도와 석장비는 본래 세트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외나무다리
계곡을 건너는 커다란 통나무다리
저승가면 건너봤느냐고 묻는다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화장실 그리고 해인사로 가는 길이다
학사대 지팡이 나무.
최치원 선생이 후학들의 학업을 걱정하며
이 나무에 잎이 나서 질 때가 내가 죽은 때이니
그때까지 학업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지팡이를 꽂았는데
살아서 잎이나 지금까지 1200년을 살고 있다는데...
장경각
법당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장경각을 마주할 수 있다.
빙 둘러 ㅁ자 구조로 지어진 장경각
안에는 긴 세월을 지내온 목판 대장경이
마치 서고에 진열된 장서처럼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숯과 소금을 이용하여 오랜 세월 동안 별다른 손상 없이 대장경을 보관해 냈던
장경판전은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세계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다.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때 대장도감에서 새긴 목판으로
이 판전에는 81,258장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거제도, 완도 등지에서 실어온 자작나무나 후박나무로 만든 대장경판은
오늘날까지도 상하거나 뒤틀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먼저, 원목을 3년 동안 바닷물 속에 담가둔다.
이 원목을 꺼내서 판을 짜고, 이 판을 소금물에 삶는다.
삶은 판을 또다시 3년 동안 그늘에서 말리고,
그 판에 글자를 한자한자 새긴다.
다 새긴 판에 옻칠을 하면 끝난다.
6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고려팔만대장경이다.
이 장경각과 고려대장경판은 1995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인사고려각판
고려시대의 불교경전과 유명한 승려들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해인사 고려각판은 대장경판과는 달리 사찰이나 지방관청에서 새긴 것이며
동·서 사간판전에 모두 54종 2,835판이 보관되어 있다.
대적광전
법보사찰 해인사의 중심 법당
본래 성주군 금당사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1897년 범운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봉안되었으며, 원래부터 있던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지장보살·보현보살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구광루
일반 대중을 위한 예불장소였으나 현재는 기념품점과 영상실이 있다
앞 마당에 노란 벽돌로 그어진 특이한 도안이 있는데
이것이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해인도'이며
누구든 합장을 하고 한바퀴 돌면 공덕을 얻는단다.
불자들이 노란 금을 따라 돌고 있다.
고사목
1,200년전 신라의 애장왕이 왕후의 병치료를 해 준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해인사를 창건할 당시 기념으로 심었다는 나무가
지금은 죽어 덧없는 세월을 회상하듯 검게 홀로 서 있다
성보 박불관
예전에 해인 초등학교 자리에 학교가 없어지고
어느새 현대판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영지
가야산의 칠불봉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
가야국의 김수로왕 아들 일곱이 가야산에 성불하러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자식을 보러 왔다가 못 만나고
영지에 비친 아들의 그림자만 보고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원경왕사 비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은 김부일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해인사 길상탑
진성여왕대 해인사부근의 전란속에서 사망한 승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본래 탑내에 탑지가 있었는데 도굴 당한 것을 1966년에 되찾음으로써
건탑과 관련된 여러 사실이 알려졌다.
성철대종사 부도탑
디자인이 아주 특이해서 살펴보았더니
환경대상인가 뭣인가 하는 상을 받은 작품이란다.
아마도 살아생전 이곳을 성철 스님이 보셨다면
가야산이 떠나도록 쩌렁쩌렁한 큰소리로
이놈들아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넓은 장소를
그리고 이렇게 치장을 했냐고 할 것 같다
성철 스님의 누더기 법복이 생각난다.
살아생전 그렇게 검소하게 사셨는데
스님과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경과 환경이다.
바로 아래 자운율사 사리탑이 있다
주차장
올라가는 길이 많이 변했다.
아스팔트가 깔려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고
보행자용 도로가 새로 생겼다.
길옆으로 보이는 계곡이 이제는 온갖 고생은 혼자 다한 듯
더러워지고 훼손되어 있어 측은한 마음뿐.
그때는 해인사가 이렇지 않았는데...
차량으로 가득한 비좁은 주차장에서 버스에 오른다
홍류동 계곡
천년 노송과 활엽수가 멋스럽게 어우러진 홍류동 계곡
십리나 이어지는 구불구불 포장도로 곁으로 물소리가 넘쳐날 듯 힘차다.
오랫만에 찾은 해인사
무척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아쉬움과 허전함을 뒤로 안은채
산행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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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매표소에서 해인사 쪽으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산행을 하면서
등산안내도와 정상석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한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익히 알려진대로 가야산의 최고봉은 상왕봉으로 해발 1430m.
하지만 경북 성주군 백운동 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하나같이 칠불봉이 1433m로 가장 높다고 적혀 있다.
칠불봉 정상석 아래 적힌 ‘가야산(칠불봉) 전설’이나 옛 백운동 대피소 앞의 ‘영남의 영산 가야산’ 등
산안내도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가야산에서 가장 높은’이라는 수식어가 칠불봉 앞에 따라 다닌다.
상왕봉은 경남 합천군에, 칠불봉은 경북 성주군에 위치해 있다.
두 봉우리 간격인 200m 사이에 도 경계선이 지나간다.
성주군의 이같은 노력은 바로 합천 가야산이 아니라
성주 가야산으로 널리 알려지기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가야산 면적의 61% 정도가 성주군에 포함돼 있어
칠불봉이 상왕봉보다 높다는 사실만 인정되면 확실하게 성주 가야산으로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산의 면적이 얼마나 포함돼 있느냐 보다는 주봉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산 앞에 그 지방의 이름이 붙는다.
하지만 성주군의 노력은 몇 가지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성주군의 주장대로 해발고도가 3m나 낮다는 상왕봉 정상의 정상석은
답사자들은 잘 알겠지만 상왕봉의 최고점이 아니라 최고점 아래 평평한 곳에 설치돼 있다.
실제 최고점과 정상석이 놓인 두 지점간의 간격이 3m 이상이라는 것이 목격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또 한가지. 국토지리정보원의 유권해석. 이에 따르면 성주군이 주장하는
칠불봉의 높이인 1433m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때문에 현재로선 가야산 주봉은 상왕봉이라는 것.
한 관계자는 “경상도의 지형도 수정작업이 실시되는 내년에 반드시 재측량을 해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산꾼들은 성주군의 노력을 높이 사고 있다.
성주쪽의 등산로가 합천쪽의 그것보다 훨씬 잘 정비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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