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산명 : 청옥산(1,403m)~두타산(1,353m)
0 위치 : 강원 동해시, 삼척시

0 코스 : 주차장~삼화사~(쌍폭/용추폭)~문간재~사원터~연칠성령~청옥산
~박달령~두타산~쉰움산갈림길~두타산성~무릉계곡~삼화사~주차장

0 일자 : 2007. 6. 17(일)
0 시간 : 9시간 /맑음



<산행시간>
08:50 삼화동 주차장
09:00 삼화사
09:20 두타산성 입구/두타산성 0.5km,두타산4.5km,쌍폭1.0km,관리사무소1.6km09:30 선녀탕
09:35 쌍폭
09:45 용추폭포/되돌아 나옴

09:50 문간재입구/문간재정상0.25km, 사원터1.8km, 청옥산4.25km, 하늘문0.1km
10:00 문간재/신성봉0.5㎞, 청옥산4.0km, 관리사무소2.7km
10:35 대피소,사원터 /청옥산3.75km,연칠성령2.45km,고적대3.5km,관리사무소3km
10:50 칠성폭포
12:20 연칠성령(1,184m)/중식 12:50출발
/청옥산1.3km,고적대1.0km, 관리사무소6.7km

13:30 청옥산(1,403.7m)/연칠성령1.3km, 고적대2.3km, 관리사무소6.7km
13:40 학등/청옥산50m, 두타산3.7km, 관리사무소 6.7km
13:55 문바위재/청옥산1.1km, 두타산2.5km, 번천하산길
14:00 박달령/청옥산1.4km, 두타산2.3km, 관리사무소 5.6km, 박달계곡
14:25 이정표/두타산1.3km,박달령0.9km

15:10 두타산(1,353m)/청옥산3.7km, 관리사무소 6.1km, 댓재
15:50 쉰움산 갈림길 /두타산0.8km, 무릉계17.7km, 쉰움산 3.0km, 천은사4.5km
16:05 대궐터삼거리/두타산성2.2km, 관리사무소4.3km, 두타산1.9km
16:40 깔딱고개입구/청옥산7.2km, 두타산3.5km, 관리사무소 2.6km,
16:50 거북바위

17:00 두타산성/두타산4.0km, 관리사무소 2.1km,
17:25 두타산성 입구
17:45 삼화사
18:00 주차장




<들어가기>
일반적으로 동해안 4대명승지로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내연산 보경사계곡,
노인봉의 소금강계곡, 그리고 두타·청옥산의 무릉계곡을 꼽는다.

백두대간이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등을 빚으며
동해안을 따라 남동쪽으로 내려오다가 동해의 해안가인 삼척지방에 이르러
한번 크게 솟구치면서 만들어 낸 명산이 청옥산이다.

두타산과 함께 사방에 드리운 능선과 고개를 끼고 있으며,
짙푸른 동해를 손아래로 굽어보고 있어 조망이 시원하다.

청옥산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이
죽지 아니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두타산
산이름인 두타는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이 있다.
4km 떨어져 있는 청옥산을 포함하여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척시의 영적인 모산으로서 신앙의 대상이며 예술의 연원(淵源)이라 하여
오십정산제당이 있고,예로부터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산행기>
삼화동 매표소
다리를 건너가니 눈앞에 무릉의 세계가 펼쳐진다.
널따란 반석위로 맑은 물이 티없이 흐르고
계곡은 여름을 기다리는지 한가롭다

무릉반석
천명이 앉아 노닐 수 있다는 거대한 암반
석장암동 이라고도 부르는 반석 위에는 수많은 글씨들이 음각되어 있다.

무릉계의 “방명록”이기도 한 무릉반석은
금란정에서 삼화사에 이르는 사이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양사언의 글씨
동해시가 펴낸 "무릉계곡 관광안내"에 따르면
무릉반석은 1,500평 규모라고 하는데 넓고 깔끔한 무릉반석 위에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선 선조 때의 명필 양사언가 쓴 글씨다.

등산로 옆의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양사언의 글씨
이는 진품이 아니라 서예가인 일중 김충현 선생의 고증으로
무릉반석에 새겨져 있던 것을 본떠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武陵仙源(무릉선원)
中臺泉石, 頭陀洞天(중대천석, 두타동천)

초서체. 옆에 안내문이 있다.
무릉선원은 유토피아를 선호하는 염원을 나타내며(도교사상),

중대천석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내적 가능성을 자연적인 발로로 나타내고(유교사상),

두타동천은 번뇌의 티끌을 없애며 의식주에 탐익하지 않고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여 이 땅에 불국정토를 이루고자하는
원력을 나타낸다(불교사상).

따라서 이 작품은 동양의 근본사상인 유불선 삼교를
동양사상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인 천인합일로 승화시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조화하고 일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럴 듯하게 설명하고 있다.

삼화사
금란정을 지나 다시 다리를 건너면 아담한 삼화사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로서

1997년 쌍용채광권내에 편입됨으로 인해
옛날 중대사가 있었던 곳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두타산성 입구
학소대 가는 길은 노송이 가득한 숲길
다리를 지나 계곡을 따라가다
두타산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쌍폭
바른골의 용추폭포에서 내려오는 물과
박달골의 물이 하나씩의 폭포를 만들어 쌍폭이 되었는데
지금은 갈수기라 실같은 물줄기

다만 밑으로 내려가 보기는 위험하고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용추폭포
사방으로 천애절벽을 이룬 바위가 감싸고 있는 폭포
청옥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가 상·중·하 3개의
항아리 모양의 깊은 바위 용소로 되어 있는데,
낙수로 인해 깎여진 기암괴석과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폭포다.

문간재 삼거리
무심코 앞사람의 뒤만 따라 가다 폭포구경도 하고...
다시 되돌아 내려와 계곡의 철다리를 건너면
문간재와 하늘문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문간재
왼쪽으로 오르는 비탈길.
경사 70도가 넘는 철계단은 하늘로 솟구친 길
휘청이고 땀방울이 맺힌다.

좌측으로는 전망이 좋은 신선봉이지만 포기하고
잠시 왼쪽으로 바라보는 빼어난 경치에 순간을 감사하게 만든다.

와폭
곧장 바른골 길을 따라 오르면 넓은 계곡
와폭 좌측은 학등 능선으로 가는 길
직진이 연칠성령으로 가는 길이다

반석위를 질러가 다시 숲속으로 들어서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건너기가 힘들 것 같다.

사원터 대피소
바위계곡 구간을 통과하고 다시 산죽밭이 이어지고...
숲속을 지키는 무인대피소가 사원터
"이승휴의 귀의터"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이 승휴는 우리 민족의 서사시인 '제왕운기'의 저자로서
두타산 쉰음산 밑의 천은사에서 이를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측은 의상대사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 고적대 갈림길이다
직진

칠성폭포
다소 지루한 숲길이 조금씩 고도를 올리고
계곡을 건너자마자
엄청난 된비알 길이 시작된다.

올라 갈수록 경사도는 조금 완만해 졌지만
오르막 길은 한없이 계속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힘겹게 오르니
하늘의 칠성님께 이어진다는...

연칠성령(1,184m)
동해시 삼화동을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嶺)이라 불리웠다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라 하는데
인조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 하였을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며 망경(望京)한 곳이라 전해진다.

백두대간 삼거리에 초라한 돌탑이 있다.
북으로는 고적대(1,354m)를 거쳐 대관령으로 이어지고,
남으로는 청옥산과 두타산을 거쳐 함백산·태백산으로 연결된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식사를 한다.
/청옥산1.3km, 고적대1.0km, 관리사무소6.7km

청옥산(1403m)
청옥산 능선 길은 완만하고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만발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어두운 숲길을 오르다 갑자기 밝아지는 공터

헬기장
구석으로 정상석이 있고 삼각점
그리고 태양열발전기가 보인다

예로부터 보석에 머금가는 청옥(靑玉)이 발견되고 약초가 많이 자생하는곳.
햇빛을 피해 다시 숲속으로...

학등
사원터로 내려가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청옥산50m, 두타산3.7km, 관리사무소 6.7km

내리막은 대간길이지만 훼손되어 자갈만 덮인 길
두타산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으로 지체되고

문바위재
청타산악회가 세운 비석에
두타산 1시간, 청옥산 30분이라고 적혀 있다.
사방이 숲으로 가려진 답답하고 지루한 산행길
/청옥산1.1km, 두타산2.5km, 번천하산길

박달재
산성12폭으로 내려가는 하산길 삼거리
넓은 공터는 완전 숲속으로 가려져 지친 등산객들의 쉼터가 된다
/청옥산1.4km, 두타산2.3km, 관리사무소 5.6km, 박달계곡

이정표가 있는 작은 봉을 지나면
오르막길이 점점 가파라진다.
/두타산1.3km,박달령0.9km

두타산(1,353m)
삼척, 동해시를 분수령으로 이 고장을 대표하는 산이며
청옥산, 고적대와 함께 해동삼봉으로 불리고 있다
한쪽으로 헬기장 그리고 중앙에 묘지가 있다

두타란 불교적 용어로 인간 세상의 괴로움을 떨치고
의식주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마음을 밝히려고 수도하는 사람을
불교계에서는 두타라 했으며 이와 같이 온 갓 쓰라림과 괴로움을 받아가며
불도를 닦는 스님을 두타승이라 불렀다 한다.

남으로 댓재로 이어지는 장쾌한 백두대간이
두타산을 만나 서쪽으로 휘어지며 청옥산과 고적대를 이어주고
동으로 쉰움산을 건너 동해바다가 펼쳐지는 최고의 전망지

하산길
숲속을 빠져나오며 좌측으로 펼쳐지는 대간능선과
그리고 멀리로 동해를 바라보는 전망바위에 선다

아름다운 노송이 군데군데 보인다.
밧줄구간을 지나고

쉰움산(683m)갈림길
노송과 어우러진 작은 바위와 고사목
바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분위기는 괜찮다.

능선길이지만 숲에 가려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직진
/두타산0.8km, 무릉계17.7km, 쉰움산 3.0km, 천은사4.5km

대궐터 삼거리
능선 길을 타고 내려오는 험한 길
미끄러운 급경사가 이어지는데
하산 길은 위험하고 시간이 지체된다

돌탑이 서있는 작은 봉우리
왼쪽이 하산길이다
/두타산성2.2km, 관리사무소4.3km, 두타산1.9km

깔딱고개 입구
지루한 숲속은 끝도 없는데
사방이 막혀 나침반을 볼 수 없으니 현재 위치도 모른 채...

물이 없는 계곡을 만난다
숲속 이정표가 반갑다
/청옥산7.2km, 두타산3.5km, 관리사무소 2.6km,

거북바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
좌측 바위틈으로 들어서면 선경이 펼쳐진다

건너로 바닥이 말라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산성12폭포
비가 오면 장관이겠지만 지금은 별로..
폭포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북이 더 신비스럽다

두타산성
건너로 관음사가 보이는 넓은 암반을
우측으로 내려서 큰 바위 옆을 돌아가

뒤돌아보는 바위군
이어서 산성 그리고 전망대에 선다

건너다 보이는 절벽의 조화
이곳이 무릉계곡이다
/두타산4.0km, 관리사무소 2.1km,

두타산성 입구
벌서 등산로 주변은 제법 어둑어둑하다.
위험한 밧줄지대가 연이어 나타나고
밑에서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삼화사
학소대 다리를 건너 내려가 경내에 들어선다.
대운전과 삼층석탑을 돌아

무릉도원의 계곡을 빠져나오면 넓은 반석
바위도 깨끗하고 나뭇잎이 물위로 비친다

삼화동매표소
암반위로흐르는 청류에 발을 담그며
산행을 접는다

------------------------------------------------------

<삼화사에 얽힌 전설 둘>

신라 서라벌에 진골 출신의 아름다운 세 처녀가 있었다.
이들은 집안 어른들끼리 가깝게 지내는 사이었으므로 절친하게 지냈다.
혼기를 맞은 그녀들이 신랑감을 고를 무렵, 신라와 백제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청년 장수 김재량은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으며,
왕궁에서는 김재량을 위해 축하연을 열었는데 공교롭게도 세 처녀가 모두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재량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세 처녀를 본 그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처녀들 또한 김재량을 사모하는 마음 걷잡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각자의 시녀를 통해 연정을 전했다.

김재량은 뛸듯이 기뻐하며, 하나도 아닌 세 처녀를 번갈아가며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소문은 파다해졌고 세 처녀는 좋은 친구 사이에서 서로
질투하고 적대시하는 사이로 변했다.

그러던 중 신라는 고구려와 전쟁을 하게 되어 김재량은 다시 전쟁터로 나가
많은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 그만 고구려군 첩자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김재량을 너무도 사랑한 세 처녀는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어 모두 산으로
들어가 두타고행을 하여 마침내 여신이 되었다.
그 산이 바로 오늘의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두타산이라 한다.

나림여신, 혈레여신, 골화여신이 된 그들은 도를 얻고 신력을 갖추고서도
진실을 깨닫지 못하였는지 김재량의 죽음을 서로의 잘못으로 미루며 저주했다.

또 그녀들은 그곳 주민들이 산에 치성드리기를 원했고 복종치 않으면 재앙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산에 성지를 개산하고 동해안으로 내려오던 자장율사는
두타산의 산세에 감격, 그곳으로 향했다.

이때 자장율사를 본 나림여신은 자신의 도를 시험하는 한편 스님이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여 자장율사를 유혹했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이 산의 산세가 하도 좋아 절을 창건할 인연을 찾으러 왔소."
"참으로 거룩하십니다. 저도 따라가고 싶사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산길이 험하고 힘들 것이니 훗날 절이 창건되거든 오시지요."

여인의 동행을 거절한 자장 스님은 초가을 달빛이 교교히 흐르는 산길을
삼경이 가깝도록 걸었다. 문득 인기척이 나는 듯싶어 뒤를 돌아본 자장 스님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먼발치에 여인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장율사는 따라오는 여인에게 사연을 듣고 싶었으나 모르는 척 걸음을 재촉했다.
골화전에 이르러 자장율사는 외딴 주막집을 발견, 하룻밤 유숙키로 했다.
어느새 따라 들어온 여인은 스님이 계신 방에 주안상을 들고 들어왔다.

"목이 컬컬하실 텐데 우선 한 잔 드시지요."

잠시 대답이 없던 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여인이여, 당신은 지금 신력을 얻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유혹하는군요.
자신의 몸뚱이가 더러운 물건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인 줄 모른다면 이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 정도의 신력을 얻었으면 좀더 공부하여 열반의 세계에 안주토록
하시지요."

나림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스님! 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앞으로 깊은 불법을 일러주십시오."
"나림 여신이여! 참으로 장한 발심입니다."

"어떻게 제 이름을…?"
"내가 잠시 선정에 들어 관하여 보았지요."

나림은 그만 감동하여 그 시각부터 스님에게 귀의했다.
처소로 돌아와 혈례와 골화여신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함께 귀의할 것을
권했으나 두 여신은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까짓 스님 하나 유혹 못하고 오히려 매수당하다니 우리 여신들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우리 둘이 함께 가서 혼을 내주고 이곳에 절을 창건치 못하게 하자.
만약 절을 세우면 주민들이 우리에게 공양을 올리지 않을 테니까."
"그 참 좋은 생각이구나."

혈례와 골화는 즉시 호랑이로 변신하여 자장 스님 앞에 나타나 길을 막았다.

"이런 무례한 노릇이 있나. 아무리 축생이기로서니 스님의 길을 막다니,
어서 썩 물러가거라."

"어흐흥…"

호랑이들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 스님은
금강삼매에 들어 몸을 금강석같이 굳혔다.

호랑이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한 마리는 발톱으로 스님을 내리쳤고,
또 한 마리는 스님의 옆구리를 물었으나, 사납게 달려든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만 다치고 말았다.
호랑이는 더욱 화가 나서 맹렬히 달려들다가 결국은 꼬리를 사리면서
도망치고 말았다.

이때 자장율사가 주문을 외우니 큰 칼을 든 금강역사가 나타나 도망치는
호랑이를 한 손으로 잡아왔다.

"자 이제 너희들의 본색을 드러내거라."

어쩔 수 없이 본 모습으로 돌아간 여신들은 눈물을 흘리며 참으로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들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잘못을 알았으면 두번 다시 그런 죄를 범치 말도록 하시오.
미움과 시기, 질투는 모두 욕심에서 비롯되니
오늘부터 욕망의 불을 끄는 공부를 하여 이미 얻은 신력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하시오."

이때 언제 왔는지 나림여신이 와 있었다.

"스님, 스님의 원력으로 우리 모두 발심하게 되었음을 깊이 감사드리며 제가 앞장서서
금당 자리를 안내하고 스님을 도와 사찰 창건에 동참 하겠습니다."

자장율사는 나림여신이 인도한 장소에 불사를 시작하니 세 여신은 장사로 변하여
무거운 짐을 나르고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절을 쉽게 세워졌다.

그 후 세 여신이 화합 발심하여 창건한 절이라 하여 이 절을 삼화사라 명했고
마을 이름도 삼화동이라 불렸다한다.

<호암소에 얽힌 전설 셋>

옛날 신라시대에 지금의 강원도 삼화사에 지혜가 출중한 주지 스님이
상좌 스님과 함께 수도하고 있었다.

어느 눈 쌓인 겨울날 저녁 예불을 올리려고 두 스님이 법당으로 향하는데
아리따운 규수와 침모인 듯한 중년 여인이 경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잠시 발길을 멈춘 두 스님은 정중히 합장하며 인사 올리는 두 여인을 맞았다.

"눈길이 험한 늦은 시각에 어떻게 이리 오셨습니까?"

주지 스님이 묻자 예의범절이 반듯해 보이는 규수가 조용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몹시 편찮으시옵니다. 부처님께 칠일 기도를 올려 어머님의 빠른
쾌차를 빌고자 합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상좌 스님은 왠지 가슴이 설레였다.
다소곳이 두 손을 모은 채 말하는 규수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부터 기도에 들어간 규수와 침모는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부처님께 간곡한 기도를 올렸으며 주지 스님도 그들을 위해 철야정진을 했다.
상좌 스님 역시 열심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 시봉을 했다.

나무를 하고 밥을 지으면서도 늘 아름다운 규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행여 밥이 질지나 않을까 싶어 두번 세번 솥 속에 손을 넣어가
밥물을 가늠했고 법당 청소도 여느 때보다 더 깨끗이 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 밤. 규수는 꿈에 수염이 긴 스님을 뵙게 됐다.

"이제 얼굴의 수심을 거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회향토록 하라.
네 간절한 정성을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실 것이니라."

꿈에서 깬 규수는 뛸듯이 기뻤다.
그녀는 더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치고는 집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주지 스님, 그간 너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정성껏 기도해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원 별말씀을요. 모든 중생의 아픔은 바로 우리 출가자의 아픔과
다름없으니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입니다."

규수와 침모가 떠난 며칠 뒤 이상스럽게도 건강하던 상좌 스님이 심한
열병으로 그만 몸져눕고 말았다.

"네가 기도 시중을 드느라 힘이 들었던 게로구나. 병이란 마음의 번뇌망상과
잡념에서 오는 것이니 누워서도 염불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주지 스님은 상좌 스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타이르고는 눈쌓인 첩첩산중에서
마을로 내려와 우선 약값에 필요한 탁발을 하려고 어느 집 대문 앞에서 시주를 구했다.

"아니, 스님께서…"
시주쌀을 들고나온 여인은 얼마 전 삼화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간 침모였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백약이 무효이던 마님의 병환이 씻은듯이 완쾌되시어
그러잖아도 날이 풀리면 인사드리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인연의 끈이란 지중한 것이로구나고 생각한 스님은 안으로 들어가
잠시 인사를 받고는 몸져누운 상좌 생각에 곧 자리를 떴다.

약을 구해 들고 다시 삼화사로 돌아오느라니 어느새 밤이 깊어 스님은 걸음을 재촉했다.
스님이 지금의 동해시 무릉계곡을 지날 때였다.

[범종]

어디선가 갑자기 "어흥" 하는 소리와 함께 큰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밤중이긴 했지만 늘 다니던 길인 데다 온 산에 덮인 눈 덕분에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스님은 꾀를 내어 바로 눈앞에 있는 폭10m가 넘는 절벽과 절벽 사이를 법력으로 뛰어넘었다.

이를 본 호랑이는 사람도 넘는데 내가 못 넘으랴 싶어 얕잡아보고는
절벽과 절벽 사이로 몸을 날렸다.
순간 "풍덩"소리와 함께 호랑이는 절벽 밑에 있느 깊은 沼(소)에 떨어져 죽었다.

호랑이가 성공하면 스님은 잡아 먹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두타산 신령이 스님을
구해 준 것이라한다.

그 후 삼척부사 김효원은 이 소를 '호암소'라 부르게 했고 남쪽 암벽에는 지금도
'호암(虎岩)'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산들이야기 > 산행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항 내연산  (0) 2010.01.10
포천 백운산~국망봉  (0) 2010.01.10
철원 금학산  (0) 2010.01.10
정선 두위봉  (0) 2010.01.10
인제 점봉산  (0) 2010.01.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