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산명 : 횡성 태기산(1,261m)
0 위치 : 강원 강원 횡성군 청일면, 평창군 봉평면
0 코스 : 신대리-송덕사입구-태기산성비-동문밖-분교터-임도-낙수대-큰성골-신대리
0 일자 : 2007. 8. 26(일)
0 시간 : 7시간 10분 /맑음
<산행시간>
07:50 신대리종점
08:30 송덕사삼거리
08:40 팬션촌
09:00 표지판삼거리 /정상까지 3.6km
09:15 칼날능선
09:30 돌탑
10:00 태기산성터(묘) /정상4.8km, 신대리 6.9km
10:30 동문밖
10:55 태기분교터
11:00 태기산정상표지판(삼거리)
11:20 하산점 삼거리
12:00 낙수대, 낙수폭포(묘지)/중식 12:40 출발
12:50 낙수대밑계곡
13:35 양수머리
14:00 독립가옥
14:25 송덕사삼거리
15:00 신대리종점
<들어가기>
오대산에서 갈라 진 차령산맥이 흥정산을 지나 남쪽으로 꺾이면서
다시 솟구쳐 오른 봉우리가 바로 태기산이다.
구두미재부터 덕고산과 구목령까지는 영춘지맥과 겹친다.
태기산은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게 쫓기어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와 싸웠다는 전설에 따라
태기산이라고 불린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는 흥정산과 오대산의 대동맥이 장쾌하고
서편으로는 봉복산과 운무산으로 갈라져 나간 지능선의 조망이 뛰어나다
또한 시누대(산죽), 물푸레, 주목군락지와 같이 원시식물이 많이 서식하며,
낙수대 폭포와 어우러진 심산계곡이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특히 겨울철에는 풍부한 적설량이 빚어내는 설경이 유난히 아름다워
겨울의 멋과 낭만도 만끽할 수 있다.
일찍이 태기산 정상은 “둔내11경”중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 하여
변화무쌍한 구름의 오묘한 조화가 장관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나
현재는 군사시설로 정상에 오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겨둔 채 돌아서야 한다.
태기산에 얽힌 전설
옛날 부족국가 시대에 맥국의 왕 태기가 춘천 지방에서 다른 부족에게 쫓겨 원주로 옮겼다.
이에 세력을 회복하기 위해 강릉지방의 예국과 최후의 전투를 하려고
덕고산(=태기산)에 이르러 군막을 치고 산성을 축성해서 병마를 훈련시켰다.
태기왕의 막하에는 삼형제 장군과 호령 장군이 있었다.
삼형제 장군은 삼형제봉에 진을 치고 군사 3백명으로 일대를 이루고,
호령 장군은 호령봉(現 회령봉)에 군사 5백명으로 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내 이웃 땅 진부면 도주골(現 도사리)로부터 예국의 대군이 쳐들어와
호령장군과 그 밑의 군사들을 전부 멸하고 태기산으로 몰려 왔다.
이러한 소식에 접한 삼형제 장군은 진을 버리고 군사를 몰아 태기산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산성이 함락되고 전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알고는
태기왕을 호위하여 산성을 벗어나 급히 피난을 하였다.
태기왕은 워낙 당황한 가운데 적군의 추격이 급하여 피난하던 중
옥산대(現 안흥동)에서 옥새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전멸하여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게 되자
삼형제 장군은 단신으로 왕을 모시고 백옥포(白衣의 장군이 왕의 옥체를 업고
물에 빠졌다 하여 부르는 이름)에 투신하여 최후를 마쳤다.
이후부터 태기왕의 이름을 따서 덕고산을 태기산이라 부르고
그 성터를 태기산성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향토사학자들은 봉평 덕거리에 덕고산이 있고, 평촌리에 삼형제봉이 있으며,
흥정리에 호령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전설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라고 말한다.
<산행기>
신대리종점
종점매점에서 직진하는 다리를 건너
마을회관을 지나면 봉복산과 덕고산,
우측이 태기산 가는 길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면 태기관광농원이 있고
이어서 산불감시 및 입산자 통제소가 있다
신대교를 건너 비포장도로.
오른쪽 옆구리에 계류가 따라 붙고
눈안에 뛰어 드는 낮은 봉우리는 피안의 세계처럼 아스라히 느껴진다
송덕사삼거리
길은 다시 시멘트 도로로 바뀌지만
뜨거운 햇빛아래 도로를 걷는다는 건 고역이다
저온저장고가 있는 삼거리
양갈래길에서 우측 다리를 건너면 등산로 안내판이 있고
개울 건너 언덕머리 숲 속에는 송덕사 지붕이 어렴풋이 보인다.
정상까지는 대략 2시간 40분 소요된다
팬션촌
평화와 건강의 집에서 계류를 따라 작은성골로 들어선다
왼쪽 봉우리가 촛대바위지만 숲에 가려졌다
이 깊은 산중에도 펜션이 들어서고..
계류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은 편안하다.
숲길을 따라 들어서면 우측으로 철조망 울타리가 자리하면서
출입금지 안내표시판을 대하게 되고
좌측으로 다시 계류를 건너 숲 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표지판삼거리
정상까지 3.6㎞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좌측으로 급경사 나무계단을 숨차게 오른다
능선
좌우로 급경사로 이루어진 좁은 길에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있는 좁은 능선이다
돌탑
울창한 소나무 숲 우측 사면을 지나면
넓은 공터에 성황당 흔적과 같이 돌멩이들이 쌓여 자리하고 있다.
길은 평평한 숲길
화전정리 당시 심어진 낙엽송과 잣나무가 울창하다
숲길이 끊어지는 곳엔 어김없이
사람키만한 조릿대 속으로 길이 묻혀있다
태기산성터(묘)
완만한 오르막길 끝에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
좌측으로 꺾어 올라서면
태기산성비가 있는 산성터다
「태기산은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261미터의 높은 산으로 달리 덕고산으로 불려왔다
이곳에는 삼한시대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새로 일어나는 신라군에 쫓기어 이곳에 성을 쌓고
신라의 대군을 맞아 크게 싸웠다는 전설과 옛기록에 따르면
성 둘레는 1.200m로 성안에는 샘이 있고
창고 와 건물이있었던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하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옛 자취는 찾아볼 수 없고
허물어진 성벽의 일부가 옛 일을 전한다고 쓰여 있다.」
동문밖
언덕 모퉁이에 몇 평정도의 공터만 있을 뿐,
성문은 어디에도 없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울창한 잣나무 숲을 따라 좌측의 봉우리를 우회하면
바닥이 온통 질퍽한 늪 구석으로 샘터가 있다
태기분교터
예전에는 화전민이 많아 분교가 있었다는데
북쪽으로 학교 운동장이었던 공터에는
시멘트 블록 기초만 남아 잡초만 가득하고..
정상표지판(삼거리)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지나면 군사도로를 만난다.
여기는 태기산 정상(1261m)
"정상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오를 수 없습니다"
좌측은 낙수대 6.9㎞, 우측은 양구두미재 3.2㎞
우측 아래 양구두미재 방향으로 내려서면
영춘지맥 분기점을 만나고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봉복산과 운무산으로 갈라져 나간 지능선은
안개로 가득하다
하산삼거리
북쪽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가면 태기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지만
굽이지는 도로모퉁이에서 왼쪽으로 하산을 한다
산죽이 있는 개당귀가 가득한 산길
계곡삼거리 표지판
계곡길삼거리(←낙수대)
산길은 좌측으로 꺾여져 내려가는데
숲속은 어둡고 질퍽거리는 지루한 길이다
낙수대(묘지)
물소리가 들리는 숲속의 안내판
계곡 물가에서 점심을 채린다
묘지에서 우측 아래를 내려다보니
높이가 10m나 됨직한 암벽틈으로 하얀 물보라를 튀기며 떨어지는 폭포
폭포로 내려가는 우회 길도 있다
왼쪽으로 나있는 급경사 길을 따라
이단으로 설치된 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가서 우측 계곡으로 보이는 낙수폭포
낙수폭포밑 계곡으로 들어선다
깊고 시원한 물줄기
계곡 쪽의 경치가 장관이다.
양수머리
수해로 없어진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계곡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길은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데
덕고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지는 양수머리
계곡은 넓어지고 좌측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산양바위
계곡길 바위를 짚고 내려가는 길
하산길이 바빠서 지나쳐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개울쪽에 옹크리고 않은 것이 꼭 염소를 닮은 바위
산양바위를 그냥 지나쳤다
길은 좀 더 넓어지면서 주위가 훤해지며
처음으로 가옥 한 채가 나타난다.
하늘아래첫집
집 앞마당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중간중간 민가도 보이는 제법 넓은 도로
보랏빛 도라지꽃이 한창이다
송덕사삼거리
뜨거운 햇볕은 사정없이 내려쬐고
간간이 오르내리는 피서차량은 먼지만 날린다
되돌아가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지고..
신대리종점
개울가로 달려가
탁족을 하며 가을을 만난다
가을은
여름의 꽁무니를 내던지고
소리없이 그냥 매일 만나는 사람들처럼
늦은 햇살 담은 서늘한 얼굴로
이제 우리 곁에 다가섭니다
지난여름의 뜨거운 열정을 뒤로
땀이 지겨워 걷었던 옷을 내리게 하고
다시 따스한 한잔의 차를 기다리게 합니다
추수를 기다리는 벌판을
가로 질러 달려온 바람소리
아!
너무 좋은 가을의 시작입니다
이 가을에 좀 더 많은 것들을 내속에 담아두렵니다
○ 위치 : 강원 횡성군 청일면, 평창군 봉평면
○ 코스 : 신대리-송덕사입구-태기산성비-동문밖-분교터-임도-낙수대-큰성골-신대리
○ 일자 : 2007. 8. 26(일)
○ 시간 : 7시간 10분 /맑음
(노랑망태버섯)오대산에서 갈라 진 차령산맥이 흥정산을 지나 남쪽으로 꺾이면서 다시 솟구쳐 오른 봉우리가 바로 태기산이다. 구두미재부터 덕고산과 구목령까지는 영춘지맥과 겹친다. 태기산은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게 쫓기어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와 싸웠다는 전설에 따라 태기산이라고 불린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는 흥정산과 오대산의 대동맥이 장쾌하고 서편으로는 봉복산과 운무산으로 갈라져 나간 지능선의 조망이 뛰어나다
(구릿대)또한 시누대(산죽), 물푸레, 주목군락지와 같이 원시식물이 많이 서식하며, 낙수대 폭포와 어우러진 심산계곡이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특히 겨울철에는 풍부한 적설량이 빚어내는 설경이 유난히 아름다워 겨울의 멋과 낭만도 만끽할 수 있다. 일찍이 태기산 정상은 “둔내11경”중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 하여 변화무쌍한 구름의 오묘한 조화가 장관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나 현재는 군사시설로 정상에 오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겨둔 채 돌아서야 한다.
태기산에 얽힌 전설 옛날 부족국가 시대에 맥국의 왕 태기가 춘천 지방에서 다른 부족에게 쫓겨 원주로 옮겼다. 이에 세력을 회복하기 위해 강릉지방의 예국과 최후의 전투를 하려고 덕고산(=태기산)에 이르러 군막을 치고 산성을 축성해서 병마를 훈련시켰다. 태기왕의 막하에는 삼형제 장군과 호령 장군이 있었다. 삼형제 장군은 삼형제봉에 진을 치고 군사 3백명으로 일대를 이루고, 호령 장군은 호령봉(現 회령봉)에 군사 5백명으로 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내 이웃 땅 진부면 도주골(現 도사리)로부터 예국의 대군이 쳐들어와 호령장군과 그 밑의 군사들을 전부 멸하고 태기산으로 몰려 왔다. 이러한 소식에 접한 삼형제 장군은 진을 버리고 군사를 몰아 태기산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산성이 함락되고 전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알고는 태기왕을 호위하여 산성을 벗어나 급히 피난을 하였다. 태기왕은 워낙 당황한 가운데 적군의 추격이 급하여 피난하던 중 옥산대(現 안흥동)에서 옥새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전멸하여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게 되자 삼형제 장군은 단신으로 왕을 모시고 백옥포(白衣의 장군이 왕의 옥체를 업고 물에 빠졌다 하여 부르는 이름)에 투신하여 최후를 마쳤다. 이후부터 태기왕의 이름을 따서 덕고산을 태기산이라 부르고 그 성터를 태기산성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향토사학자들은 봉평 덕거리에 덕고산이 있고, 평촌리에 삼형제봉이 있으며, 흥정리에 호령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전설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라고 말한다.
신대리종점 종점매점에서 직진하는 다리를 건너 마을회관을 지나면 봉복산과 덕고산, 우측이 태기산 가는 길
(사위질빵)비포장 도로를 따라가면 태기관광농원이 있고 이어서 산불감시 및 입산자 통제소가 있다 신대교를 건너 비포장도로. 오른쪽 옆구리에 계류가 따라 붙고 눈안에 뛰어 드는 낮은 봉우리는 피안의 세계처럼 아스라히 느껴진다 바위벽에는 커다란 벌집이 붙어있는 길(노봉방)길은 다시 시멘트 도로로 바뀌지만 뜨거운 햇빛아래 도로를 걷는다는 건 고역이다
송덕사 삼거리저온저장고가 있는 펜션 앞에서 우측 다리를 건너면 등산로 안내판이 있고 개울 건너 언덕머리 숲 속에는 송덕사 지붕이 어렴풋이 보인다. 정상까지는 대략 2시간 40분 소요된다
팬션촌 평화와 건강의 집에서 계류를 따라 작은성골로 들어선다 왼쪽 봉우리가 촛대바위지만 숲에 가려졌다 이 깊은 산중에도 펜션이 들어서고.. 계류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은 편안하다.
숲길을 따라 들어서면 우측으로 철조망 울타리가 자리하면서 출입금지 안내표시판을 대하게 되고 좌측으로 다시 계류를 건너 숲 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표지판삼거리 정상까지 3.6㎞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좌측으로 급경사 나무계단을 숨차게 오른다
능선 좌우로 급경사로 이루어진 좁은 길에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있는 좁은 능선이다
돌탑 울창한 소나무 숲 우측 사면을 지나면 넓은 공터에 성황당 흔적과 같이 돌멩이들이 쌓여 자리하고 있다.
길은 평평한 숲길 화전정리 당시 심어진 낙엽송과 잣나무가 울창하다 숲길이 끊어지는 곳엔 어김없이 사람키만한 조릿대 속으로 길이 묻혀있다
태기산성터(묘) 완만한 오르막길 끝에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 좌측으로 꺾어 올라서면 태기산성비가 있는 산성터다
「태기산은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261미터의 높은 산으로 달리 덕고산으로 불려왔다 이곳에는 삼한시대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새로 일어나는 신라군에 쫓기어 이곳에 성을 쌓고 신라의 대군을 맞아 크게 싸웠다는 전설 과 옛 기록에 따르면 성 둘레는 1.200m로 성안에는 샘이 있고 창고 와 건물이 있었던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하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옛 자취는 찾아볼 수 없고 허물어진 성벽의 일부가 옛 일을 전한다고 쓰여 있다.」
동문밖 언덕 모퉁이에 몇 평정도의 공터만 있을 뿐, 성문은 어디에도 없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울창한 잣나무 숲을 따라 좌측의 봉우리를 우회하면 바닥이 온통 질퍽한 늪 구석으로 샘터가 있다
태기분교터 예전에는 화전민이 많아 분교가 있었다는데 북쪽으로 학교 운동장이었던 공터에는시멘트 블록 기초만 남아 잡초만 가득하고..
정상표지판(삼거리)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지나면 군사도로를 만난다. 여기는 태기산 정상(1261m) "정상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오를 수 없습니다" 좌측은 낙수대 6.9㎞, 우측은 양구두미재 3.2㎞ 우측 아래 양구두미재 방향으로 내려서면 영춘지맥 분기점을 만나고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봉복산과 운무산으로 갈라져 나간 지능선은 안개로 가득하다
하산삼거리 북쪽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가면 태기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지만 굽이지는 도로모퉁이에서 왼쪽으로 하산을 한다 산죽이 있는 개당귀가 가득한 산길
계곡삼거리 표지판 계곡길삼거리(←낙수대) 산길은 좌측으로 꺾여져 내려가는데 숲속은 어둡고 질퍽거리는 지루한 길이다
낙수폭포 물소리가 들리는 숲속의 안내판 계곡 물가에서 점심을 채린다
묘지에서 우측 아래를 내려다보니 높이가 10m나 됨직한 암벽틈으로 하얀 물보라를 튀기며 떨어지는 폭포 폭포로 내려가는 우회 길도 있다
왼쪽으로 나있는 급경사 길을 따라 이단으로 설치된 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가서 우측 계곡으로 보이는 낙수폭포
낙수폭포밑 계곡으로 들어선다 깊고 시원한 물줄기 계곡 쪽의 경치가 장관이다.
양수머리 수해로 없어진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계곡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길은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데 덕고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지는 양수머리 계곡은 넓어지고 좌측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산양바위 계곡길 바위를 짚고 내려가는 길 하산길이 바빠서 지나쳐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개울쪽에 옹크리고 않은 것이 꼭 염소를 닮은 바위 산양바위를 그냥 지나쳤다 길은 좀 더 넓어지면서 주위가 훤해지며 처음으로 가옥 한 채가 나타난다.
하늘아래첫집 집 앞마당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중간중간 민가도 보이는 제법 넓은 도로 보랏빛 도라지꽃이 한창이다
송덕사삼거리뜨거운 햇볕은 사정없이 내려쬐고 간간이 오르내리는 피서차량은 먼지만 날린다 되돌아가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지고..
(무궁화)신대리종점 개울가로 달려가 탁족을 하며 가을을 만난다
가을은 여름의 꽁무니를 내던지고 소리없이 그냥 매일 만나는 사람들처럼 늦은 햇살 담은 서늘한 얼굴로 이제 우리 곁에 다가섭니다 지난여름의 뜨거운 열정을 뒤로 땀이 지겨워 걷었던 옷을 내리게 하고 다시 따스한 한잔의 차를 기다리게 합니다 추수를 기다리는 벌판을 가로 질러 달려온 바람소리 아! 너무 좋은 가을의 시작입니다 이 가을에 좀 더 많은 것들을 내속에 담아두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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