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박
▲ 가시박 북미가 원산지로 한강변을 타고 퍼지고 있다.

가시박은 북미가 원산지인 1년생 박과 식물로호박의 연작피해를 막기 위한 대목으로 사용하기 위해 90년대 안동지방에 처음 도입됐다고 한다. 그 이후 야생식물이 되었으며 씨앗들이 강을 타고 강변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해서 남한강 일대와 전국의 강변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 생명력 하나만 놓고 보면 고향땅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보는 듯하지만 호박을 닮은 넓은 잎으로 주변의 식물들을 고사시키고 오로지 자신들의 세력확장을 위해서만 힘쓰는 것을 보면 제국주의의 속성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 가시박 꽃은 은은하고 예쁘지만 그 속내를 보니 예뻐보이질 않는다.

그의 존재를 안 것은 식물도감을 통해서였다. 그때는 그냥 "이런 꽃도 있구나!"했고, 그 꽃을 행운처럼 만났을 때에만 해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들꽃을 만났다는 기쁨에 충만했다.

'가시박'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박처럼 생긴 열매에 가시가 있나 살펴야 했는데 작은 도꼬마리 같은 열매에 잔가시가 송송하게 맺힌 것이 열매라고는 생각치도 못했기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렸다. 호박잎 혹은 오이잎을 닮은 이파리는 주변의 풀밭을 온통 독식하고 있었고, 그들과 견주고 있는 것은 환삼덩굴뿐이었다.

현재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로 지정된 것은 모두 6종인데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가 그것이다. 번식력이 대단해서 다른 것들이 살지 못하게 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외래종으로 들어와 우리네 땅에서 야생식물화 된 것들이다.

▲ 가시박 줄기에도 열매에도 잔가시들이 가득 하다.
처음 만났을 때, 새로운 종을 담는다는 기쁨에 취했는데 그의 속내까지 보고나니 몇 개라도 뽑아버리고 왔어야 하는 것인데 아쉽다. 우리네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는 식물, 지자체에서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행사들도 하곤 했다니 그들의세력 확장이 실감난다.
들꽃을 통해서도 인간사를 보고, 우리네 역사를 본다
가시박의 넓은 이파리들이 자신들의 햇살을 막아버렸을 때에도, 덩굴로 그들의 목을 조여올 때에도 수천만 년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것들은 아프다는 소리조차 하지 못하고, 하루만 하루만 더 버티자고 몸부림을 치다 말라 죽어갔을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그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꽃도 피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하고 가시박에게 자신들의 터전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 가시박 겉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속내까지 봐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
▲ 가시박 양평 강변에서 만난 가시박 군락지에서
자기만 아는 꽃은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자기만 아는 사람도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아무리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제국주의는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겉으로 예쁘게 보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냈을 때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속내를 보았을 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아니, 겉으로 보이는 만큼의 속내를 간직하려면 참으로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화사하지 않고 수수하게 생긴 연록색의 꽃, 그 수수함에 껌뻑 속았다. 그러나 그 수수함 뒤에 숨겨진 잔인함을 보면서-그 잔인함이란 오로지 자신만을 안다는 것-그 순수함마저도 거짓이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우리네 땅에 들어와 우리네 들꽃들과 어우러져 야생식물이 된 꽃들, 그들이 모두 미운 것은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제국주의적인 속성을 가진 식물들, 그들이 미울 뿐이다.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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