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입구부터 깔린붉은 양탄자
선운사 입구에 들어서자 숨이 멎는 듯하다.
개울 건너 나무 밑엔 꽃무릇이 수놓아진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다.
꽃잎 하나하나가 붉은 띠를 이루어 양탄자의 씨와 날이 되었고,
꽃술마저 붉은 실을 꼬아세워 놓은 듯 멎은 숨이 다시 터져나올 때까지 꽃무릇은 그대로 꿈이었다.
꽃무릇은 석산이라고 하는데 백합목 수선화과의 구근류로서 중국과 일본이 원산인 다년초이다.
꽃이 무리지어 핀다하여 '꽃무릇'이라고 하였는데
9월 중순이면 땅에서 꽃대가 솟아나와 무더기 지어 피어난다.
그리고 꽃잎이 모두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푸른 잎이 하나 둘 돋는다.
그 잎들은 추운 겨울을 나고 5월이면 시든다. 꼭 보리와 같은 생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꽃무릇을 '상사화(相思花)'라 부르기도 한다.
한 몸 한 뿌리에서 나서 잎과 꽃이 서로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형의 화려함과는 달리 슬픈 사랑과 그리움을 지닌
애절한 꽃이라고 많은 시인 묵객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무릇 군락지는 영광 불갑사,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 등이다.
"옛날 어느 깊은 산속 아담한 산사에 속세를 떠나 오직 불도만 닦는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유난히 큰 비가 쏟아져 내리던 어느 여름날, 이 산사에 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비 때문에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고 사찰 마당의 나무 아래서 비가 그치기만을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그 여인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 때부터 스님의 혼자만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날이 갈수록 수행도 하지 않고 식음도 전폐한 채,
오직 그 여인에 대한 연모에 시름시름 가슴앓이를 하던 스님은
급기야 석 달 열흘 만에 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결국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함께 기거하던 노스님이 이를 불쌍히 여겨 양지쪽 언덕에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한포기의 풀이 자라났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긴 꽃줄기에서 선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 '꽃무릇 전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