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백암산 산행기

0 산명 : 백암산(상왕봉 741.2m)

0 위치 : 전남 장성, 전북 정읍 입암면, 순창 복흥면

0 코스 : 백양사~약사암~상왕봉~능선사거리~백양사

0 일자 : 2010. 6. 27(일)

0 시간 : 4시간 /비

(산행시간)

03:00 태백가든

08:00 매표소

08:20 쌍계루

08:25 백양사

08:35 약사암 갈림길(운문암2.1k, 백양사0.5k, 상왕봉3.7k, 약사암 0.4k. 백학봉1.3k 영천굴0.5k)

08:50 약사암(백양사 0.5k, 백학봉 1.2k)

08:55 영천굴(상왕봉 3.1k. 백학봉 0.8k 백양사 0.9k)

09:20 안내판(상왕봉 2.8k. 백학봉 0.4k 백양사 1.4k)

09:40 학바위(상왕봉 2.5k. 백학봉 0.1k 백양사 1.7k)

10:05 구암사 갈림길(상왕봉 1.9k. 구암사 0.9k. 백양사 2.3k)

10:10 헬기장(721m)

10:15 안내판(상왕봉 1.3k. 백학봉1.1k 백양사 2.9k)

10:35 안내판(상왕봉 0.3k. 백학봉 2.0k)

10:50 백암산 상왕봉(741.2m)

11:00 능선사거리(백양사3.3k,운문암0.5k,몽계폭포2.3k,상왕봉0.5k)

11:15 청류암갈림길(백양사2.6k,능선사거리0.5k,청류암2.7k)

11:20 운문암갈림길(운문암0.2K)

11:30 이정표(운문암0.2K 사자봉1.3K, 백양사1.6K,백학봉1.9K

11:40 약사암갈림길

11:50 백양사

12:05 매표소

12:15 백양사박물관

13:40 고바우풍천장어

15:20 새만금

매표소

어둠을 달려 도착한 백암산

잔뜩 흐린 날씨속에 출발을 한다

쌍계루

개울가에 작은 연못 끝으로

그림 같은 쌍계루가 보인다

절의 성보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식이며

백양사의 본 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이 과정에 정도전, 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비자나무 숲

극락교를 돌아서면

하늘을 가리는 무성한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153호.

북방 한계점에 자생하는 수백 년 된 거목들 5,000여 그루

구충제로 효험이 있다지만 바둑판이 제일이다

약사암

갈림길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된비알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비가 내리는 숲길은 완전 어둠

짙은 안개로 사방이 갇혀있다

잔돌이 깔려있는 약사암 오름길

직각으로 올려보는 기암절벽에

갈지자로 이어지는 산길 따라 거친 숨을 몰아쉰다.

올라서면 정갈한 절집이 안개에 가려져있다

영천굴

앞마당을 가로질러 오르면

수백 척 기암절벽이 하나의 바위덩이다

길은 여전히 가파르다.

100여 m나 올랐을까. 천연석굴인 영천굴이 나온다.

석굴 안은 20평 남짓한 넓이다.

텅 빈 석굴 안을 석조관세음보살상이 홀로 지키고 있다.

옛날에 바위 구멍에서 항상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스님은 쌀이 더 많이 나올까 하여 작대기로 구멍을 쑤셨는데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전해내려오는 미혈(米穴) 전설이다.

영천굴에서 나와 다시 백학봉을 향한다.

가파른 고갯길엔 끝이 보이지 않는 목재 계단이 설치돼 있다.

이제 계단이 다 끝났나 싶으면 또 다른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 옆으론 천애절벽이 우뚝하다.

얼마나 수많은 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백학이 노니는 곳에 갈 수 있단 말인가.

학바위

끝없는 나무계단은 하늘로 이어지고

안개에 가려진 안부에 올라서면

용아장성 버금가는 암릉길이 이어진다

백학봉

수 백길 절벽의 전망바위

천년고찰 백양사가 계곡에 가득하겠지만 지금은 하얀 안개만

바위틈에 자리 잡은 휘 늘어진 낙락장송

만고풍상 고통 속에 수 백 년을 지켜는 고고한 자태에

산과의 만남을 만끽한다

헬기장

호남정맥 갈림길.

평탄한 길을 가다 내리막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가면 급경사

기암절벽 화려함도 이곳에서 끝이 나고

완만한 능선 길에 포근한 육산이다

호남정맥이 갈리고 주능선이 합류하는 이곳

722봉

암릉 길을 지나다 멋들어진 풍모를 지닌 소나무를 만난다.

혹 백암산 산신령이 심심할 때 벗하는 소나무가 아닐까.

이인문이 그린 <송계한담도> 속 소나무를 닮았다.

세속의 번거로움을 벗어나 조용히 은일의 삶을 즐기는 탈속한 선비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더 올라가면 722.6봉 도집봉인데

상왕봉만 흘깃 보일뿐이므로 지나친다.

상왕봉(741.2m)

기린봉을 사면길로 휘돌아 잡목 숲을 헤치가면

정상엔 안내도와 삼각점이 있고 사방으로 전망이 시원하다.

산죽이 우거진 길을 지나서 마침내 백암산의 고스락인 상왕봉에 이른다.

어찌나 밋밋한지 여기가 과연 최고봉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직진은 남창고개에서 사자봉. 남창골. 백양사등으로 길이 갈라지고

내장산의 까치봉, 신선봉, 장군봉이 일열로 서 있지만 안개만 가득하다

능선사거리

상왕봉,사자봉,백양사,몽계폭포로 갈라서는 사거리

몽계폭포는 남창계곡의 크고 작은 폭포 중 가장 유명하고 경치가 뛰어난 폭포이다

조선 선조 때 하곡 정운용이라는 이가 수도한 곳이라 하여 하곡폭포라고도 하는데

폭포 아래 바위에 ‘하곡석문’이라 새겨진 글씨도 정운용의 것이라고 전해진다.

청류암갈림길

1890년(고종27)에 작성된 '관음전중건기'가 현존하고 있어 그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하는데,

현존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가 있다.

청류암에 얽힌 근세의 설화가 전해지는데

하루는 주지스님이 잠을 이루는데 수성리(지금은 백양댐 수몰지역)에 가면

부처님이 계시니 그 부처님을 관음전에 모시라는 현몽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가니 과연 부처님이 계시어 그 불상이 있게 된 연유를 물으니

그곳에 가난한 부모와 사는 젊은 처녀가 보리밭에서 김을 매다가

땅속에서 캐어낸 불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는 불상을 잘 모시고 공경해야 하기에 집 뒤 바위 밑에 모시고

조석으로 정안수를 떠올리며 부모님이 건강하고 부자되기를 빌었다고 얘기하였다.

그 때 청류암 스님이 와서 백미 3말을 주고 부처님을 모시고 가겠다하니 쾌히 허락을 했다.

그 부처님이 영험이 신통하여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드리면

소원을 한가지씩을 꼭 이루게 되어 많은 신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청류암이 부찰이 되고 그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을 따로 짓게 되니

그 전각이 바로 청류암 관음전이다.

그 후, 그 처녀는 백미 3말이 없는 셈치고 이자쌀을 계속 불렸는데

그 쌀을 가져가는 사람은 재수가 있고 사업이 성취되어

이자에 원금 이상을 보태어 십년이 채 되지 않아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어

항상 청류암 부처님께 공양예배 드렸다 한다.

현재 그 불상은 6.25때 국묵 스님이 담양으로 난을 피해 옮겨 놓았는데,

분실되어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 전봉준 장군이 청류암에서 은거하다가 하산하던 중 체포된 곳이기도 하다.

운문암갈림길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암산 꼭대기인 상왕봉 아래에 자리한 운문암은 서옹스님 등

많은 큰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선방스님들이 앞다퉈 찾아드는 곳이다.

이 암자에 금을 입지 못한 부처가 있었다.

선조 초기에 진묵대사란 분이 이 암자에 있으면서

불상을 만들다가 완성되기 전에 어디로 가면서

다시 자기가 와서 완성하기 전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부탁해서 그 말대로 하였는데

그 뒤 진묵대사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흙만 바른 부처로 전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과 관련 깊은 진묵대사의 본명은 일옥이라 했는데 이상한 행적이 많았다.

백양사 운문암은 옛부터 많은 선지식이 정진하신 곳이다.

6.25로 모두 불타고 현재는 1980년대의 불사라고 한다.

6.25때 국군이 올라와서 불질렀는데 불질르러 올라온 군인 하나가 반대했다고 한다

운문암을 불지르고 내려가다가 인민군을 만나 몰살당했는데

불지르는 것을 반대한 한사람만 살았다고 한다

그 생존자가 80년대 까지 일년에 서너번 올라와서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약사암 갈림길

처음 산행을 시작한 갈림길

어둡고 무더운 날씨로땀인지 빗물인지

겨우 하늘이 개이고

백양사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이 창건하고, 고려에 들어 1034년(덕종 3) 중연이 중창한 후

정토사라 개칭하였으며 1574년(선조 7) 환양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은 1917년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불 ·보살입상 ·16나한상이 봉안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건립한 사천왕문과 1896년경에 세운 명부전이 있다.

이 밖에 백양사 재건에 힘쓴 소요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소요대사 부도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쌍계루

이 누각은 1370년에 붕괴된 이후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이 과정에 정도전, 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특히 1381년에 작성된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따르면

이 곳에서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지므로 '쌍계루'라 이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매표소

안개와 함께한 산행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들이야기 > 산행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국 구주산~아소산  (0) 2010.11.17
가지산~운문산  (0) 2010.05.16
완주 대둔산  (0) 2010.04.24
금산 진악산  (0) 2010.03.29
영월 태화산  (0) 2010.03.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