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백운산((1,222.2m)

 

0 위치 : 전남 광양시 옥룡면

0 코스 : 진틀마을~삼거리~정상~신선대~삼거리~진틀마을

0 일자 : 2013. 4. 3()

0 시간 : 5시간10/맑음

 

지리산과 섬진강 조망의 최고 명당 백운산

봄이 되면 유난히 끌리는 곳이 있다. 바로 남녘의 섬진강이다.

 

3월 초순에는 고로쇠, 중순에는 매화, 하순에는 산수유.

이 계절에 섬진강의 벚꽃을 보고 오를 수 있는 산으로는 광양 백운산이 가장 적당하다.

 

이름으로 따진다면 백운산·백운봉·백운대 등

우리나라에 백운(白雲)’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어림잡아 수십 개가 넘는다.

 

전남 광양 백운산 1,217m, 인천 중구 백운산 256m, 경남 밀양 백운산 891m

경남 함양 백운산 904m, 강원 원주 백운산 1,022m, 전북 장수 백운산 1,279m

부산기장 백운산 522m, 경기의왕 백운산 567m, 강원정선 백운산 883m,

경기포천 백운산 903m

 

이 근사한 이름을 가진 산 중에서 광양의 백운산이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정상에 올라보는 지리산과 섬진강 풍광 때문이다

 

 

 

 

 

 

백운산 등산로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백운사~상백운암~백운산 왕복코스지만

요즘에는 진틀마을에서 오르는 코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백운산은 자연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생태계의 보고다.

산속에는 백운란·백운쇠물푸레·백운배·백운기름나무등 희귀식물도 여러 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지금 백운산은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동곡계곡 진틀마을 입구.

뾰족하게 솟은 정상을 바라보며 콘크리트 포장길을 500m 정도 오르면 계곡 직전의 갈림길.

 

 

계곡을 따르는 왼편은 병암폭포를 거쳐 신선대로 곧장 이어지고,

계곡을 건너는 오른편 길은 병암마을의 병암산장 민박집을 거쳐 신선대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병암산장

산길을 한 굽이 돌아 오르면 이내 마지막 민가인 병암산장 민박집이 눈에 띈다.

이곳까지 차량으로 올라올 수는 있지만 주차금지.

 

 

민박집을 왼쪽에 끼고 아름드리 산수유나무 사이로 오르면

고로쇠나무를 잔뜩 심어 놓은 비탈밭이다.

 

 

이어 길가에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병암계곡

길은 너덜지대라 울퉁불퉁하지만 호젓하고 좋다.

고로쇠로 유명한 산답게 고로쇠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인공적으로 심은 게 아니라 자생하는 나무들이다.

 

 

백운산 고로쇠물에는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인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날 도선국사가 이곳 백운산에서 수개월 동안 가부좌를 틀고

도를 닦은 후 일어서려고 하는데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았다.

 

도선국사는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붙들었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나무의 상처 부분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도선국사는 그 물을 받아 마셨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굳어 있던 관절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무릎을 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나무를 뼈에 이로운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로 불렀는데,

나중에 고로쇠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틀삼거리

산길은 계속 계곡을 오른편으로 끼고 이어진다.

계곡가의 진틀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른편 지능선 중간쯤에 샘터가 하나 있지만 식수로는 조금 꺼려진다.

 

왼편 지능선보다 오른편 지능선 산길이 정상까지 조금 더 가깝다.

신선대를 먼저 들르는 왼편 지능선을 따f른다.

 

 

 

 

 

 

 

 

 

 

 

 

 

 

 

 

 

능선

잠깐 가파른 구간을 지나 능선 마루로 올라서면

 

백운산 주릉과 왼편으로 도솔봉(또아리봉·1,127m), 등주리봉(1,123m)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나무가지 넘어로 힘차다.

 

 

 

 

 

신선대

산길에는 층층나무·때죽나무·신갈나무·철쭉·생강나무가 봄볕을 받고 있고,

길옆에는 조릿대가 푸르다.

 

갈라진 바위를 지나면 곧 눈앞에 집채만한 바윗덩이가 길을 막는다. 신선대다.

드디어 호남정맥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이 신선대 삼거리에서 왼편 길은 한재, 오른편 길은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신선대에서 오른편 남동쪽으로 보니 백운산 정상인 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미소 짓는다

 

 

 

 

 

 

 

 

 

 

 

 

 

 

 

 

 

 

 

 

 

 

 

 

백운산 정상

 

 

정상은 바위지대다.

백운산은 호남정맥의 맹주인 광주의 무등산보다 조금 더 높은 호남정맥 최고봉이다.

명성에 어울리게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최고다.

 

 

저 멀리 서쪽으로는 장수 땅에서부터 힘차게 달려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산첩첩이고, 발밑에는 동곡계곡이 깊다.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백두대간의 정기를 갈무리한 지리산 줄기의 장엄한 산 물결.

호남정맥의 끄트머리에서 백두대간의 끄트머리를 감상하는 맛은 참으로 장엄하다.

 

정상에 올라온 등산인들은 하나같이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남쪽으로 섬진강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정상에서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삼거리

산길에는 고욤나무·때죽나무·산딸나무·다릅나무·서어나무·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광양시청에서 매달아놓은 이름표를 보며 공부도 덤으로 할 수 있어 좋다.

 

 

 

 

 

 

 

 

진틀삼거리

다시 되돌아 만난 갈림길 삼거리.

여기서 진틀마을로 가려면 오른편 길로 내려가야 한다.

 

 

철쭉나무 군락이 배웅하는 산길은 조금 거칠지만 마음은 참 넉넉하다.

이어서 병암계곡 그리고 진틀마을 까지 원점회귀 산행이다 

 

 

 

 

 

 

 

 

 

 

 

 

 

<대표적인 코스>

 

1코스(동동마을~백운산수련장~억불봉~정상~진틀마을)16km, 6시간30분 소요.

2코스(선동마을~백운사~상백운암~정상~진틀마을)12km, 5시간 소요.

3코스(진틀마을~삼거리~정상~신선대~삼거리~진틀마을)10km, 4시간 소요.

4코스(논실마을~한재~정상~삼거리~진틀마을)11km, 4시간30분 소요.

 

 

 

 

 

 

 

 

 

 

 

 

 

 

<산행시간>

11:00 진틀입구 /정상3.3km,한재3.1km,논실0.8km,

11:10 병암산장 /정상2.7km,진틀0.6km,

12:00 진틀삼거리 /정상1.4km,진틀1.9km,신선대1.2km,

12:25 능선

13:30 신선대/정상0.5km,진틀3.0km,한재2.1km

13:50 정상(1,222.2m)/진틀3.3km,억불봉5.9km,신선대0.5km,매봉3.6km,관동10.7km,

14:35 삼거리 /정상0.3km, 억불봉5.6km,진틀3.2km,

15:15 진틀삼거리

15:50 병암계곡

16:10 진틀입구

 

 

 

 

 

 

 

 

 

 

 

 

 

 

형제봉에서 노랭이봉까지 21.3km 백운산 종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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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능선을 걸어가는 길
ⓒ 전용호

 


광양에는 백운산이 있다. 백운산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흰 구름이 이는 산으로 높은 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백운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이 남도지방을 휘감아 돌다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우뚝 선 산이다.

산 하나에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고 등산객들이 산줄기를 타고 넘을 때 보통 종주를 한다고 한다. 장거리 산행으로 대표적인 종주길이 지리산이다. 이런 장거리 종주길이 아니지만 산 하나에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네 개나 있는 산이라면 종주라는 말을 써도 될 법하다. 보통 백운산 종주라 하면 백운산의 맨 끝 봉우리인 조령마을 형제봉에서 시작해서 동동마을 노랭이봉까지 21.3㎞를 걷는 길이다. 걷는 시간만 10시간 이상 걸린다.

형제봉으로 올라 시작한 종주길

백운산 종주를 하기 위해 서둘렀다. 지난 12일 이름 아침, 아직 어두운 길을 뚫고 광양읍으로 향했다. 읍내에서 오전 7시 10분에 조령마을로 가는 20번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버스는 시간을 조금 지나 도착했다. 버스에는 승객이 세 명이 탔다. 버스는 구불거리며 이 마을 저 마을 들르다가 종점에서 멈춘다.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이 참 좋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을 지나고 천변으로 소나무가 구불거리며 늘어서 있다. 생태체험마을로 '달뱅이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도로를 따라 1㎞ 정도 올라가니 성불교가 나오고, 왼쪽으로 100m 정도 더 올라가니 등산로 이정표를 만난다. 형제봉까지 2.6㎞를 올라가라고 알려준다.

산길은 최근에 정비를 한 것 같다. 잘생긴 소나무 숲길을 가파르게 올라간다.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이더니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형제봉은 높이가 861m로 봉우리 두개가 형제처럼 다정하게 서있다. 처음부터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숨이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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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이 흐르는 백운산 능선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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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에서 본 호남정맥
ⓒ 전용호

 


형제봉에 오르니 호남정맥이 꿈틀거리며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용의 등에 타고 있는 기분이다. 첫 봉우리의 감동을 뒤로 하고 도솔봉으로 향한다. 산길은 능선으로 이어져 편안하다. 조금 내려서더니 다시 오르막길이다. 등주리봉을 지나고 도솔봉까지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진다.

도솔봉은 해발 1123.4m로 1000m가 넘어선다. 바로 아래는 성불사가 있다. 그래서 도솔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나 보다. 정상은 헬기장이 있다. 시원한 느낌을 준다. 도솔봉에서 보는 백운산 상봉 능선이 장엄하다.

지리산 능선과 마주하는 산

산길은 가파르게 내려선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는 게 못내 서운하다.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 맛이 종주를 할 때 느끼는 산 맛이다. 힘들게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고, 또 다음 봉우리로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산행이다.

따리봉은 1127.1m로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따리'는 배를 저을 때 쓰는 도구란다. 따리봉에서는 지리산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뚝 솟은 천왕봉에서부터 노고단을 지나 종석대까지 1500m 이상 되는 봉우리들이 길게 늘어섰다.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보려면 따리봉이 제일이다. 전망대에 앉아서 잠시 쉰다.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선지 피로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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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봉, 상봉, 억불봉으로 이어지는 백운산 능선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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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가 있는 따리봉. 멀리 바가가 보인다.
ⓒ 전용호

 


따리봉에서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면 한재다. 한재는 광양과 구례를 넘나드는 길이다. 한재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2.6㎞를 가야 한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길에 발걸음이 무겁다. 무릎이 아프고 골반이 삐걱거린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너무 무리를 했나보다.

나무계단을 올라서서 잠시 쉰다. 그냥 내려갈까 고민도 한다. 큰 마음 먹고 종주를 계획했는데 정상을 올라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다시 힘을 내서 올라서니 산길이 아주 좋다. 평지를 걷는 것 같은 산길에 흙이 다져져서 밟는 촉감도 좋다. 그냥 내려갔으면 후회할 뻔 했다.

그렇게 쉬엄쉬엄 걸으니 우뚝 선 신선대가 나온다. 신선대에서 큰 숨을 한번 쉬고 정상으로 오른다. 바위가 돋아난 거친 산길을 오르면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섰다. 백운산 정상이다. 백운산상봉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높이가 1222.2m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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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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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 가는 바위 능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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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능선과 마주보는 백운산 상봉
ⓒ 전용호

 


정상은 사람 몇 명이 올라설 정도다. 백두산에서부터 한반도를 타고 내려오는 산줄기는 이곳 백운산에서 끝맺는다. 정상 표지석을 잡고 백운산 정기를 받는다. 사방을 둘러본다. 북으로는 지리산이 병풍처럼 서있고, 동으로는 섬진강이 감싸고, 서로는 호남정맥이 달려온다. 남으로는 바다가 멀리 보인다.

버스종점인 조령마을에서 정상까지 13㎞ 정도 걸었다. 정상에서 억불봉과 노랭이봉을 거쳐 동동마을까지는 9.5㎞를 더 가야 한다. 억불봉으로 향한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은 헬기장을 만난다. 헬기장에서는 백운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고민이다. 종주를 하려면 억불봉으로 가야 하는데….

예사롭지 않은 암자 상백운암

더 산행을 하면 어두워서야 마을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백운암으로 내려서면 해발 1008m인 억불봉을 갈 수 없지만 세 시간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아쉽다. 산행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다음에 또 와야 할 이유를 남긴다.

내려오는 길에 상백운암에 들렀다. 절집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석축으로 쌓은 담장 안에는 집이 두 채가 자리 잡았다. 담장 사이로 난 돌계단을 올라서니 스님이 바리에 물을 한 가득 떠서 건네준다. 내친김에 마시니 물맛이 아주 좋다. 암자 뒤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바위 밑에서 나오는 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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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암자 상백운암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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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백운암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 전용호

 


스님에게 절집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니 상백운암의 역사를 구구절절 말해준다. 상백운암은 백운산의 정맥이 삼존불 봉황의 둥지터를 형성했다고 하는 주천하길지(周天下吉地)로 이름난 스님들이 수도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옛날 도선국사가 처음 터를 잡았고,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중창한 이후 1000년이 넘게 지켜오던 절집을 여순사건 때 경찰이 불을 질러 없어져 버렸단다. 절집 보물이던 삼존불감마저도 도난을 당해 현재는 동국대 박물관에 있다는 슬픈 사연도 이야기 해준다. 초라한 절집에 걸린 현판이 너무 멋있다고 하니 5대 종정인 서옹스님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상백운암은 현재 복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로가 없어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한다. 복원을 하지 않아도 풍겨 나오는 기운은 어느 암자에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해발 1040m에 자리 잡은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어디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억불봉과 노랭이봉을 가지 못해 아쉽다. 백운암에서 내려오면 백운사가 있다. 백운사를 지나 시멘트포장길과 산길을 번갈아가며 내려왔다. 도로로 내려서니 버스시간에 10분 정도 남는다. 오후 5시 25분 쯤 광양읍내로 가는 21번 시내버스가 내려온다.

덧붙이는 글 | 백운산 종주 길은 조령마을에서 출발하여 성불교-형제봉-도술봉-한재-신선대-정상(11.8km/약 6시간 10분)-억불봉삼거리-노랭이봉-동동마을(9.5km/약 4시간 50분) 까지 총 21.3㎞, 11시간이 소요.

10월 12일 산행은 조령마을-1.2㎞-성불교-2.6㎞-형제봉(861.3m)-3.2㎞-도솔봉(1123.4m)-2.1㎞-따리봉(1127.1m)-1.3㎞-한재-2.6㎞-상봉(1222.2m)-1.0㎞-헬기장-1.2㎞-백운사-2.8㎞-용소(버스정류장)으로 총 18㎞를 걸었음.

광양읍에서 조령마을로 가는 버스는 05:30, 07:10, 08:40에 있으며, 하산지점을 지나 광양읍으로 가는 버스는 16:20, 17:20, 20:20, 22:10에 있음.(자세한 시간은 광양시 누리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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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의산(鳳儀山)

 

0 일시 : 2013.3 12

0 코스 : 봉의산순의비~봉의산성~정상~소양정~비석군~오층탑

 

 

 

봉의산 순의비(鳳儀山殉義碑)

 

몽고군과 대치하여 줄기찬 항전을 벌였던 곳,

나라를 지키려는 굳은 의기로 굽힐 줄 모르는 항거를 하였으나 힘이 다하여 산성이 적에게 함락되자

참전하였던 관민이 함께 이 산에 피를 뿌리고 전사를 했으며

 

끝까지 생존하였던 관민들은 적에게 굴하여 욕되게 사느니 보다 깨끗한 대의에 순()하겠다고

가족과 함께 자결을 결행했던 곳이 바로 이 봉의산이다.

 

 나라를 지키려다 뿌린 선열의 숭고한 피가 스며있는 산성은 허물어진채 오늘까지 그 잔영이 전하고 있으나

대의에 순한 이름 모를 수많은 선열들의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198362일 춘 천 시

 

 

 

 

 

 

전망대

춘천시 중심부와 춘천역과 의암호 춘천역앞의 공터는 미군기지가 있던 자리 지금은 개발 중.

 

 

봉의산성(鳳儀山城)

 

허물어진 자취만 남아있다. 강원도 기념물 제 26

언제 쌓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7세기 이후 신라에 의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217(고려 고종 4) 거란족 일파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魯周翰)이 전사하였다고 하며,

 

1253(고종 40)몽고병이 침입하자 춘천 주민이 이 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였는데,

몽고병의 포위가 장기화 되면서 성안의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여

소와 말을 잡아 그 피를 마시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등 비참한 광경이 있어났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가 진을 쳤던 곳이라고 하며,

6·25전쟁 때에는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산성의 둘레는 약 1,280m에 달하며, 높이는 5~6m 내외이나 지형에 따라 다르고,

성벽은 대체로 붕괴되었으나 일부 구간에는 석축이 남이 있으며, 일부 구간은 지난 1991~1994년에 복원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봉의산(鳳儀山 301.5m)

 

정상에 오르니 춘천시가지가 잘 조망된다.

정상부에는 봉수대가 있다고 하는데 군시설과 통신 중계탑이 있다.

 

 

 

 

 

체육시설

정상 바로 밑에 운동시설이 시민들의 휴식공간

 

 

 

 

소양정(昭陽亭)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

처음 창건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말 문인들의 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때 이미 존재한 것이 확실하다.

운곡 원천석의 시에 소양정이라는 명칭이 보이나, 15세기경에는 이요루(二樂樓)라는 이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본래 현재 위치보다 아래쪽인 소양강 남쪽 강변에 있었다.

 

1605(선조 38) 홍수로 유실된 것을 1610(광해군 2) 부사 유희담(柳希聃)이 다시 지었고,

1647(인조 25)에는 춘천부사 엄황(嚴滉)이 크게 수리하면서 정자 동쪽에 선몽당(仙夢堂)이라는 부속 건물을 세웠으며,

이때 다시 소양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1777(정조 1) 홍수로 또 유실되었으며, 1780(정조 4) 부사 이동형(李東馨)이 다시 지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66년 옛터보다 위쪽이 되는 봉의산 기슭의 현 위치에 중층 누각으로 다시 지었다.

현재의 소양정은 정면 4, 축면 2칸의 누정 형식으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소양8

 

鳳儀朝雲(봉의조운)

虎岩松風(호암송풍)

月谷朝霧(월곡조무)

牛野暮煙(우야모연)

孤山落潮(고산낙조)

梅江漁笛(매강어적)

華岳淸嵐(화악청람)

鷺州歸帆(로주귀범)

 

 

 

 

 

 

 

공병중대 전적지 표지석

 

소양교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6·25전쟁 초기 6사단 공병대대 1중대가 배치되어

소양교를 건너 공격해 오는 적과 혈전을 전개했던 장소이다.

중대잔여병력(1개 소대 규모)은 소양교 남쪽 입구 봉의산 기슭에 구축된 방어진지에 배치되었다.

중략

627일 새벽, 적 정찰병이 소양교에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곳 진지에서 내려다보고 쏘는 공병중대의 정확한 사격에 모두 쓰러졌다.

 

07:00시경부터 적은 대대적인 포격을 시작했고, 적 포탄은 봉의산과 도청 부근의 시내 중심부에 마구 떨어졌다.

봉의산 뒤편에 위치한 16포병대대도 소양교 북쪽의 동방제사공장 부근 보리밭 속에 숨어있는 적에 대하여 포격을 개시했고

아군의 포탄이 터질 때마다 적군이 이리저리 피해 다녀 보리밭이 파도치듯 했다.

 

08:00시경, 드디어 적 보병들이 도로위에 출현하였고, 소양교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소양교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공병중대가 소총과 기관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자 적은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다.

또다시 적이 공격해오고 공병중대가 사격으로 격퇴하는 것이 몇 차례 반복되자 소양교 위에는 적의 시체가 가득히 쌓였다.

중략

 

적은 11:00시경 T-34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적 전차는 소양교 중간 지점에서 공병중대 진지를 향해 전차포 사격을 퍼부은 후

소양교 위에 널려있는 동료들의 시체를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며 다리를 건너오기 시작했고 그 뒤를 적 보병들이 줄지어 따라왔다.

 

공병중대는 기관총 총열이 파열되어 더 이상 사격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전투를 계속하여 적을 저지 했다.

그러나 중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고 적 전차 뒤를 따라 소양교를 건너 온 적 보병들이 봉의산으로 공격해 올라오자

더 이상 방어 할 수가 없어 소수의 생존자들은 석사동 방향으로 전투 이탈 하였다.

 

보병보다도 더 용감히 싸웠고, ‘공격시에는 가장 앞에 나가고 방어시에는 가장 나중에 나온다는 공병의 정신을 지킨 공병중대 장병들,

그 공병의 혼이 서려있는 이곳에 그들을 영원히 기리고자 표지석을 세운다.

 

표지석 바로 아래에 소양교가 있다

 

공병중대 전투 표지석 바로 뒤쪽에 대포처럼 생긴 큰 바위가 북쪽(소양강건너편)을 향해 우뚝 서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바위가 보이지를 않고 그 자리에 소양강변 절벽위 남쪽 도로변에 있던 소양정이 6·25전쟁 때 소실되고 이곳에 복원되었다.

 

 

 

 

춘본학교설립자비

 

춘본학교1942년에 교육자이자 자선사업가였던 윤용성 씨가 가난한 소년,

제때 배우지 못한 소년, 장애인들을 위해 춘천 소양로 2가에 세웠던 사립학교다.

 

광복 직후에 윤용성 씨는 중앙로에 있던 일본(미도리) 학교 터에 춘주(春州)학교를 새로 세우면서

춘본학교 학생들을 춘주학교에 편입시켰는데, 그에 따라 자연히 춘본학교는 문을 닫았다.

그때 춘본학교의 학부형들이 설립자 윤용성 씨를 기념하여 194510월 봉의산 기슭에 공덕비를 세웠다.

 

이후 춘주학교는 6.25전쟁 뒤에 춘천 중앙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으니,

오늘날의 춘천 중앙초등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春技桂心旬節之墳

 

주인공 춘천기생 계심의 묘비이다. 조선 명기중의 한 사람이나

기생으로의 명성보다는 절개를 지킴으로써 조선시대의 가치관에 부합된 삶을 산 비운의 여인이다.

 

그녀는 고작 관청에 소속된 관기에 불과했지만 그의 절개와 일관된 행적에 감동을 받은

춘천의 선비들이 세운 비석이기에 그 가치가 더해진다.

본래 그녀의 묘소는 이곳이 아닌 소양1교에서 현재 후평동 방향의 산기슭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정된다.

지금의 도로가 개설되면서 묘가 소실되면서 묘비는 소양사 입구 계단 윗편에 옮겨 놓았었다.

 

일부 파손된 부분을 시멘트로 때우는 등 묘비가 많이 훼손된 것은 세월의 풍화가 아닌 이건과정에서 생긴 상처로 보인다.

 

춘천의 문화축제인 소양강 문화제의 시원인 제1회 개나리 호수제 때 계심의 정절을 기리고자

춘천의 접객업소 여인들이 등불을 들고 시가행진을 하기도 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춘천문화원에서 1997년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고 춘천시에서 안내판을 세운 것이다.

 

비석 뒷면에는 해서체로 "節妓全姓桂心名少仍母賤籍敎坊.簡潔之姿幽貞性持身無異盧閨房十七....."

라고 시작되는 계심의 행적이 한자로 음각되어있다.

 

주인공 전계심은 조선 22대 정조 임금 때 천한 집안 출신인 관노였다.

비록 미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용모가 아름답고 단정한 행동으로 칭송이 자자했다.

춘천 부사로 부임한 김처인의 소실로 가연을 맺은 후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 부사는 곧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한 후 떠났으나 소식이 없자

그녀의 어머니는 속인 것이라며 그녀를 서울의 기방으로 팔아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기방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계심은 이미 부사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그가 반드시 찾아 올 것이라는 실낱같은 믿음의 희망으로 견디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와 고결한 성품이 소문이 나자 수많은 사내들의 유혹이 있었지만

그녀는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정숙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계심은 자신에게 욕망의 눈길을 보내던 한량의 폭력에 의해 정조를 유린당하고 뱃속의 아이마저 낙태하고 말았다.

낭군을 만날 면목이 없어 상심한 계심은 님에 대한 사랑을 지켜 나가고자 부사에게

사랑의 사연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간직하고 있던 은장도로 자결하고 말았다.

 

계심이 자결하던 날.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그녀가 찾아와 애원하는 꿈을 꾼 부사는 기이한 생각이 들어 계심을 찾아보니

그녀는 꿈속의 모습처럼 처절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부사는 안타까움과 불쌍한 생각에 시신을 거두어 그녀의 고향인 춘천의 봉의산록에 장사지내 주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순찰사가 사대부가 부인들도 힘든 것을 계심이 해냈다며 그 행적을 가상히 여겨 열녀정문(烈女旌門)을 세워주었고

1796년에 춘천의 선비들이 그녀의 절개를 높이 사 후대에 귀감이 되도록 묘비를 세워주었다.

묘비의 글은 박종정이 짖고, 글씨는 류상륜이 썼다고 한다.

 

 

 

 

소양로 비석군(昭陽路碑石群)

 

관찰사(觀察使)와 부사(府使)등 고을의 수령(首領)이 고을을 다스리면서 이룩한 공적이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비로서

칭송(稱頌)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서 永世不忘碑, 愛民善政碑, 頌德碑, 公德碑, 興學碑, 淸白碑 등 다양한 명칭을 붙이고 있다. 

 

 

 

 

불망비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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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삼악산

0 일시 : 2013. 3.  9(토)

0 코스 : 정양사~갈림길~큰초원~흥국사~등선폭포

 

 

 

 

 

 

 

 

 

 

 

 

 

 

 

 

삼악산에는 등선폭포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금강굴과 61'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이름하여 '등선 8'이라고 부릅니다.

 

 

 

주렴폭포

옥 구슬이 발처럼 내린 듯한 주렴폭포

 

 

비룡폭포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비룡폭포

 

 

 

옥녀담

선녀가 목욕하던 옥녀담

 

 

백련폭포

흰 비단천을 펼친 것 같은 백련폭포

 

 

승학폭포

신선이 학을 타고 나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승학폭포'

 

 

 제2폭포

 등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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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봉화산(526m)

 

0 위치 : 강원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0 코스 : 강촌역~290m~정상~209m~검봉산막국수~자전거길~강촌역

0 시간 : 4시간 30/맑음

 

기상청은 올 겨울이 기상자료 수집이 시작된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추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오늘은 소한의 얼음이 녹는다는 대한입니다

추위에 멀리 갈수는 없고 가까운 춘천근교의 봉화산을 찾았습니다

 

철도산행의 원조격인 산

수도권에서 자동차나 열차로 1시간 정도면 강촌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검봉과 봉화산은

작은 산세에 비해 이웃하고 있는 삼악산 못지않게 사계절 등산인들과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도권전철이후 당일치기가 가능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다 교통편이 매우 편리하고,

북한강변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세를 즐기며 여행한다는 즐거움이 따르는데다가

강원도 특유의 별미인 먹거리들을 쉽게 맛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검봉과 봉화산이 합작으로 빚어놓은 유명한 구곡폭포가

여름에는 수많은 피서객들을, 겨울에는 빙벽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강촌유원지는 100여 곳이 넘는 식당과 숙박업소를 비롯한 위락시설들이 골고루 자리하고 있어

예전부터 젊은이들의 야유회 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검봉과 봉화산은 밖에서 보기에는 제법 험준해 보이지만,

산으로 들어가 보면 등산로가 위험지대를 벗어나 이어져

기본적인 등산장비만 갖추면 노약자나 초심자도 쉽게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우리나라 도처에 있다.

강원도 영월의 남한강가 태화산에서 분기한 영춘지맥이 북으로 치달아 장곡현에서

한강기맥을 가로 질러 홍천의 가리산을 거쳐 춘천의 대룡산으로 이어져 와서

연엽산에서 모래재와 소주고개를 지나 소주고개를 지나 490m봉에서

정북으로 방향을 틀어 2km 거리에서 봉화산을 들어올린다.

 

봉화산은 검봉보다 약 20m 낮은 산이지만, 흘러온 산맥으로 보아 검봉의 형님뻘이 된다.

소주고개로부터 이어져 온 능선이 봉화산을 먼저 들어 올리고 나서 검봉을 빚어 놓았기 때문이다.

 

봉화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 아래 구곡폭포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소주고개로 이어지는 남릉을 경계로 서쪽에 쟁골계곡과 미나리폭포,

동쪽으로는 마을 주민들이 피난처로 여겨 온 창촌3리 둔일 마을이 있다.

 

둔일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세가 날 일()자형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화를 막을 수 있는 지형이라 6.25 때에도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창촌리의 옛 이름은 둔일, 노일, 박일을 합한 삼일치로 불렀다 한다.

노일은 둔일 북쪽 산 너머 마을이고, 박일은 지금의 면소재지인 창촌리의 옛 이름이다.

 

산이름에 걸맞게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이 볼 만하다.

북으로는 구곡폭포가 있는 협곡 건너로 검봉이 마주 보이고,

검봉 너머 멀리로는 화악산, 실운현, 응봉, 촉대봉이 하늘금을 이룬다.

 

봉화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크게 두 곳이 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찾는 보편적인 들머리는 구곡폭포유원지 주차장이고,

다른 하나는 강촌 마을의 창촌중학교 뒤쪽 펜션타운 뒤편에서 올라가는 북동릉 길이다.

 

 

 

북동릉은 봉화산을 오르는 능선길 중에서 가장 길다.

강촌역에서 우측으로 창촌리 방면 도로를 따라 약 100m 거리에 이르면

전철이 지나는 다리를 지나면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뚜렷하다.

이곳이 북동릉 등산로 시발점이다.

 

능선길로 들어가 올라가면 소삼각점 동판이 있는 196.8m봉을 지나간다.

잡목숲 능선으로 30분 오르면 하늘이 트이며

오른쪽으로 검봉 동릉이 마주보이는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를 뒤로하면 다시 숲터널이다.

능선을 따라 가면 급경사 오르막을 지나 290m봉을 지나간다.

290m봉에서는 오른쪽 아래로 구곡폭포 주차장의 모텔 지붕이 내려다보이고,

협곡 건너로는 하늘금을 이룬 검봉 정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강촌에서 구곡폭포 유원지로 이어지는 차도와 나란히 편안한 능선 길이 이어진다.

이후 3~5분 간격으로 올망졸망한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전진하는

능선 길이 아기자기하고 편안해서 기분 좋게 갈 수 있다.

 

이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10분 거리에 이르면 왼쪽 갯골 방면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를 만나고,

35분 더 오르면 봉화산 정상이다.

 

봉화산 정상은 일명 두루봉이라 하며,

옛날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였던 듯 평탄한 공터이다

 

전망도 비교적 시원해서 바로 북쪽에 검봉이 보이고,

그 너머엔 삼악산이 가깝게 보이며,

쾌청한 날엔 서북쪽으로 화악산과 명지산등의 경기도 가평의 여러 고산들이 하늘금을 긋고

그리고 뒤편인 남쪽으로는 멀리 용문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 안내판은 최근에 새로 세워졌다.

이곳 정상에만 오면 속이 뒤집힌다

 

 

 

 

 

 

 

 

 

 

 

우선 산높이가 제 각각이다.

지형도에는 486.8m, 한국의산하에는 486.8m, 위키백과에는 487m,

월간 산 등산지도 510m, 400명산지도 515.1m로 되어있다

 

두 번째로 정상석도 수난이다

처음에는 춘천 그냥산악회가 세운 스테인리스 기둥형 정상비(봉화산 487m)가 있었다.

어느날 춘천시에서 오석으로 만든 세로형 정상비(높이487m)를 만들어

둘을 나란히 세워두다가 슬그머니 스텐정상석은 사라져 버리고,

또다시 오석으로 된 가로형 정상석(520m)을 만들어 나란히 세워놓았다.

 

정상석이 두 개가 되니 등산객이 하나를 정상 아래로 내 던져 버렸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가로형 정상석을 버리고,

다시 사각목재로 된 정상목 526m을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그 운명도 장담할 수가 없다

봉화산은 결국 세월이 가면서 정상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재료도 스텐, 오석, 목재로 변했다

 

하산은 486.8m봉을 지나 문배고개나 임도를 경유해 구곡폭포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길이는 약 9km, 5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들머리

 

 

 

 

 

 

 

요즘 보기힘든 토끼 발자국

 

 

 

참나무 시들음병

 

20048월 경기도 성남시 이배재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참나무시들음병은 병원균 라펠리아(Raffaelea sp)균의 균낭을 몸에 지닌

매개충 광릉긴나무좀이 참나무에 침입해 발생하며,

 

병원균이 도관을 막아 수분과 양분의 상승을 차단함으로써

나무들이 빠르게 시들면서 빨갛게 말라 죽게 돼 참나무의 에이즈로 불리는 무서운 병이다.

 

병든 나무의 하단에는 매개충이 뚫고 들어가면서 발생한

톱밥처럼 생긴 목분이 쌓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갯골~북동릉 코스 갈림길

 

갯골 코스는 북동릉 코스 입구에서 약 500m 더 간 곳인 강촌천 안내판과

강촌 갯골마을 관광안내판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간다. 방곡정미소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휘도는 길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북동릉 상 290m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북동릉을 바라보며 25분 거리에 이르면 작은 축구장이 나온다.

곧이어 오른쪽으로 진흙과 통나무로 지은 민박집 마당으로 올라서게 된다.

마당에서 왼쪽 계류를 건너는 합판 다리를 건너 100m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너 낙엽송숲으로 이어진다.

 

100m 더 들어서면 왼쪽 계류를 건너 뚜렷한 계곡길로 들어선다.

이 길은 불과 30m 거리 작은 막사 앞에서 왼쪽 급경사 길로 이어진다.

숲터널로 이뤄진 길 주변에 유난히 두릅나무가 많다.

계곡길을 따라 20분 가량 올라가면 북동릉 삼거리다.

 

 

 

 

 

 유리산누에나방 고치

 

 

 그사이 정상석이 바뀌었다

 

 

 

 

 

 

 딱따구리

 

 

 

참나무혹벌

소나무혹병은 Cronartium orientale에 의한 병으로 참나무류와 기주교대를 하는 병이다.

가지나 줄기 부분이 부풀어 중간에 둥근 모양을 만든다.

 

때문에 소나무혹병에 걸린 줄기는 예전부터 목공예를 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고,

민간에서는 작은 항아리나 바가지로 만들어 썼다

 

소나무에 생기는 혹병이 참나무류와 교대를 한다고 하여

참나무에 발생하는 혹을 참나무혹병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소나무 혹병과 기주교대하는 병원균은 참나무의 줄기가 아니라 잎에서 생활을 한다.

따라서 줄기에 혹 모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잎의 뒷면에 노란색의 가루같은 증상을 보인다.

 

 

 

강촌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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