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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의 산실,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지리적으로 치악산 동남기슭에 우뚝 솟은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산악지대로 외부와 차단된 산골이면서도 산길로 10리만 가면 

박달재 마루턱에 오르고, 이어 충주, 청주를 거쳐 전라도와 통하고, 

제천에서 죽령을 넘으면 경상도와 통하며 원주를 거쳐서 강원도와도 통할 수 있는 교통의 길목으로 

 

배론이란 지명은 이 마을이 재한 산골짝 지형이 배 밑바닥 모양이기 때문에 유래한 것으로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 또는 음대로 배론(徘論)이라고도 합니다.

 

제천, 원주간의 국도변에 위치한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 교회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입니다.


 배론성지의 유래와 걸어온 길

 

조선시대의 행정지명으로 제천현 근우면 팔송정리 도점촌으로 옹기를 굽던 곳입니다.
배론에 천주교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791년에(정조15) 일어난

신해박해 이후로 추정되는데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숨어든 교우들의 은신처가 되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재건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지역이며, 1855년(철종6년)에서 1866년(고종3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 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입니다.

또한 1861년 별세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분묘가 소재한 지역인 동시에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자인

남종삼의 생가가 있는 지역(산넘어 묘재)입니다.

배론성지는 1911년 경성교구에 속해 있습니다가

1968년 원주교구에 속하였으며 1970년대 들어 개발되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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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박달재 목굴암( 木窟庵)

 

주소지: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박달고개 

목각공원에서 100여m 아래에 천년목전

목굴암오백나한상을 볼 수있다.

 

박달재에서 가장 유명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조각가는 성각 스님(속명 어성호)으로 춘천시의 극락암에서 주지로 있다가,

14년 전 제천을 찾았다가 박달재의 풍광에 흠뻑 취해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성각 스님은 박달과 금봉이 전설을 불교와 접목한 불교 조각공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중 백미는 1천년이 넘는 느티나무 안에 무려 3년6개월 동안 500 나한상과

삼존불을 손수 작업하여 완성한 것이다.


그 개금불사(改金佛事)가 끝나면 박달재는

또 하나의 보물을 갖고 우리를 또 한 번게 부르게 될 것이다.

 

 

법명 성각 이성호 작가가 충북 제천시 박달재의 목굴암(木窟庵)에 목굴암전(木窟庵殿)과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을 느티나무 고사목 두 작품으로 불전을 건축한 암자이다.   

 

목굴암(木窟庵)은 느티나무 고사목 둘레 8m, 높이 약 6.5m에 

2005년 5월부터 2008년 7월까지 3년 2개월에 거처 나무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아미타불을 조각한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인 고목은 충주에서 발견된 고사목으로, 작가는 박달재에 얽힌 박달이와 

금봉이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그 둘의 영혼이 부처의 힘으로 

천년을 이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목굴암(木窟庵)은 내부 폭이 좁아 한 번에 한명씩 밖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은 이 작품을 찾는 이들이 홀로 작품을 감상 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각하고 

나아가 주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목굴암(木窟庵) 꼭대기에는 가지를 깎아 만든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은 진흙  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박달이와 금봉이의 영혼이 

극락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의 비어있는 속을 깎아 넓혀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그 다음 울퉁불퉁한 내부 표면을 다듬어 두께가 일정하도록 하여 아미타불을 조각한 후 금을 입혀 마무리 하였다.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은 느티나무 둘레 8.5m, 높이 7.2m에 2008년 10월부터 2012년 4월까지 

3년 6개월에 거처 고사목의 쪼개진 나무 안에 삼존불과 오백나한상을 조각한 작품이다.   

 

오백나한이란 열반한 부처의 생전 설법내용을 정리하기 위하여 모였던 500명의 제자를 의미한다.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와 희노애락, 백팔번뇌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여겨지는 나한을 믿는 문화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크게 성행 하였다. 

한국의 많은 사찰에서는 나한전을 건립하여 부처 뿐 아니라 그 제자들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의 내부 굴곡을 살려 표면을 다듬고 오백나한을 조각하였다. 

그 다음 나무의 중심에 과거를 관장하는 제화갈라불과 좌우 협시불로는 

현재를 관장하는 석가모님불, 미래를 관장하는 미륵불로 구성된 삼존불을 조각하였다. 

 

이 구성은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세 부처와 그 제자들의 깨달음을 느끼고 

마음의 편안을 얻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충주에서 이 나무를 발견하는 순간 부처의 제자들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일본인에게 나무를 판매하려던 주인을 만나 “민족의 유산으로 남기고자 한다.”고 설득하여 

이 나무로 오백나한전의 작품으로 승하할 수 있었다. 

 

(출처: 박달재 목굴암 제작기) 

 

둘레 8m. 높이6.5m. 천년된 느티나무안에 아미타부처님을 조성 하고

가지목에 청련, 황련, 백련의 연꽃을 3년 2개월의 각고끝에 세계적인 굴법당을 성각스님이 조성

 

몸을 굽혀 들어가면 뻥 뚫린 속에

아미타부처님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둘레8.5m, 높이 7,2m 천년된 느티나무에

500 나한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3년 6개월의 각고 끝에 조성했다

 

2층 시목전시관에도 많은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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