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바람꽃

혹시나 해서 달려간 곳, 그곳에서 너도바람꽃이 수줍은 듯 인사를 합니다.

처녀치마는 아직 꽃대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초록의 너른 이파리를 펴고 낙엽속에 꽃몽우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봄은 이렇게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피어나는 곳은 계곡 가파른 경사면이라

봄이 오면 땅이 녹으면서 흙이 무너져 내리는 곳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그곳에서만 보이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이 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너져 내린 흙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너도바람꽃,

씨앗이 떨어져 싹을 틔우는 전초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봅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냥 자연상태에서 그런 것이라면 조금 마음이 덜 아플 터인데

주변의 변화가 아무래도 계곡과 맞닿아 있는 경사면을

급격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봄이라고 피어난 꽃, 곱디고운 순백의 하얀 꽃잎에 흙이 붙어 있고, 상처도 났습니다.

어떤 꽃도 갓 피어난 제 얼굴에 흙이 붙고, 상처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원하지 않는 일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만나도 끝내 피어나는 꽃,

포기하지 않을 꽃이기에 그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군락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데 이렇게 경사지의 흙이 무너져 계곡물을 타고 흘러가니

어쩌면 내년에는 이곳에서 이들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바람꽃이 그곳에만 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는 중부지역에 피어나는 너도바람꽃은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아주 가까운 몇몇 곳에는 변산바람꽃이나 노루귀, 복수초가 피어나는 곳도 있는데

그들도 해마다 개체수가 줄어간다고 합니다.

우리 곁에서 피어나던 꽃들이 하나둘 우리와 이별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잘못이기에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악조건을 불평하지 않고 무너진 흙에서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그들이 있어 위로를 받습니다.


바람꽃은 "newyear's gift"라고 한답니다.

자연이 주는 새해의 선물, 긴 휴식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되는 봄의 선물,

새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은 봄이라는 얘기기도 하겠지요.

매년 피어나는 꽃, 그런데도 그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설렙니다.

그러나 올해는 심각하게 훼손되는 현장에서 너도바람꽃의 뿌리를 보면서 울었습니다.



그렇게 피어난 꽃 기특해서 활짝 핀 모습을 만나러,

만주바람꽃과 처녀치마를 만나러 따스한 봄날 몇 차례 더 다녀올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 퍽퍽하여 살기 힘들다고 떠나면

이런 복에 겨운 일들도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서글퍼집니다.



-빌려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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