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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들연 2017. 2. 11. 22:42

 

 

 

정월 대보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권 1 <기이(紀異)> 편이다.

신라의 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이 정월 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서 산책을 하는 중에 쥐와 까마귀가 왕에게 다가왔다.

 

쥐가 사람처럼 소지왕에게 말하되, 까마귀를 좇아 가보라고 하였다.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니 한 노인이 나타나 왕에게 올릴 글을 바쳤는데,

봉투에 이 봉투를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한 신하가 소지왕에게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소지왕을 뜻하니 열어보라고 권했다.

소지왕이 글을 열어보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지왕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그 안에 숨어 있던 왕비와 승려가 간음을 하고

반역을 꾀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소지왕은 자신에게 이를 알린 까마귀에 보답하기 위해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고,

해마다 약식(약밥이라고도 한다)을 지어 제사를 드리게 했다고 전한다.

 

이 제사의 풍습이 남아 '달도(達道, 모든 일에 조심한다는 뜻)'라고 전해지는데,

대보름 후 첫번째 오는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며 행동거지를 경망스럽게 하지 않도록 했다.

 

정월 보름에 대한 의례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나온다.

 신라에서는 정월 보름에 연등을 달아 기념했다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이 풍속은 후에 초파일의 연등 행사로 바뀌어 남아 있다.

 

 

의례와 풍습

 

소지왕의 기록 이전에도 한반도에서는 대보름에 여러 형태의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유추된다.

새해 첫날인 정월 명절에 각 가정 단위로 제사를 지내고 가족간의 행사를 치루었다면,

정월 대보름의 제사는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달맞이나 달집태우기 같은 풍습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대보름날 밤에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 성취를 빌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달빛이 희면 많은 비가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마을 공동체의 제사인 동제(洞祭)나 의례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행사의 의미가 있었다.

 

제사의 형태는 제관이 축문을 읽는 유교적인 방식이 많지만,

무속과 같은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굿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낭굿, 별신굿 등의 명칭이 있는데 하회별신굿, 은산별신제, 전남 해남의 도둑잡이굿,

 전남 완도 장보고당제, 전남 보성 벌교갯제, 충남 연기 전의장승제, 전북 고창 오거리당산제,

경북 안동 도산부인당제, 경북 안동 마령동별신제, 강원도 강릉 남근제, 전북 김제 마현당제 등이 대표적인 무속 행사이다.

 

대보름의 풍년과 복을 비는 행사로는 볏가릿대세우기·용알뜨기·놋다리밟기 등이 있고,

놀이로는 지신밟기·용궁맞이·쥐불놓이(놀이)·사자놀이·줄다리기·차전놀이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더위팔기도 있다.

 

쥐불놀이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나타나 있다.

대개 정월부터 대보름 사이에 행해지는데, 논두렁의 잡초와 병충을 없애며, 재가 날려서 거름이 되는 효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