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은 지금~
가리왕산은 지금
/와라바라산악회
평창의 두 가지 행사의 공통점
생물다양성 총회와 동계올림픽
인천아시안게임 그리고 평창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경기 기록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화제가 많았다. 14개의 세계신기록이 만들어지고, 북한 고위급 인사가 이례적으로 폐막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인천시민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인천시의 올해 연말 채무액 3조1991억원이 예상되는데 그 가운데 1조원 가량이 경기장 등 아시안게임 관련 시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생겼다고 한다. 당시 3선을 노리던 안상수 전 시장은 “아시안게임으로 한국 제3의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과 20조원의 부가가치 효과와 27만여명의 고용 유발효과 등의 경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고 홍보했었다. 그러나 토목업자와 개발업자의 배만 불려주고, 빚만 남았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서 앞장섰던 정치가들은 남겨진 빚더미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아시안게임장으로 사용되었던 신설된 시설에 대해서 이후 재활용 사용이 높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미 여러 국제행사 이후 관련시설이 재활용되지 않고 애물단지가 되고 있는 사례가 많다. 결국 빚은 고스란히 인천시민의 몫으로 남았다.
다음 국제스포츠경기의 개최지인 평창은 어떠한가. 평창이 인천아시안게임과 다를 수 있을까.운영 예산 2조540억원, 인프라 예산 6조8935억원 등 대규모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제효과는 어떠한가. 2011년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을 때, 현대경제연구소는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64조 9천억원이나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 이를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국은행 강원본부는 2012년 11월 발표한 연구자료에서 “경기시설 건립비용, 올림픽 종료 이후 시설 유지 및 운영 비용 등을 고려하면 향후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전망했다. 동계올림픽을 시설투자를 최소화한 녹색올림픽으로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벤쿠버도 50억달러의 적자를 봤다. 그리고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은 개최 이후 주민 1인당 356만엔 부채를 남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에는 비즈니스적 측면의 손익계산으로 도저히 드러날 수 없는 숨겨진 비용이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500년 이상된 원시림의 파괴이다. 엄청난 재난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올림픽 헌장을 훼손하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와 정부
지금 평창에서 10월 6일부터 ‘유엔 생물다양성협약(CBD) 제12차 당사국총회(COP12)’가 열리고 있다. 이번 총회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생물다양성(Biodiversity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을 주제로 열리며 수립된 목표달성을 위한 ‘평창로드맵’도 채택,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평창은 지속가능한 발전, 생물다양성을 강조하는 당사국총회를 개최할 자격이 있는가. 지구상 생물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지구적인 행사 뒤에서 벌어지는 평창의 다른 얼굴이 있다. 평창에서 벌어지는 생태계 파괴의 모습을 보면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당사국 총회 개최는 너무 사치스러운 행위이며, 한국이 세계인을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와 정부는 ‘녹색올림픽’을 표방하면서 가리왕산에서 벌목을 시작했다. 가리왕산은 대규모의 풍혈 지역이 있는 곳이다. 풍혈지역이란 바위틈에서 여름에는 찬 공기가,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지역이다. 이로 인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고산 및 아고산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들이 안정적으로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식물유전자원 보호에 최적으로 생물다양성 유지 및 보전을 위한 핵심 지역이다. 따라서 가리왕산은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식물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주목, 왕사스레나무, 마가목 등 한국 희귀 수목의 분포지이며, 나무의 연령대도 다양해 산림 가치가 매우 높다.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오던 500년 원시림이다. 그리고 2008년 10월 23일 가리왕산 일대 2475ha에 해당하는 면적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산림청에 의해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평창올림픽 유치 이후 2012년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에 따라 산림청은 2013년 6월 활강경기장 건설 예정지 78ha를 해제 고시했다. 그리고 생물다양성 당사국 총회를 앞둔 지난달 17일 가리왕산에 대규모 벌목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벌목공사는 생물다양성 총회를 위해 평창에 참가하는 국제사회를 조롱하는 행위이며, 명백한 올림픽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올림픽은 전세계인의 스포츠와 문화의 행사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에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는 올림픽행사에 제3의 가치를 포함했다. 바로 환경이다. IOC는 1999년 ‘아젠다 21’를 채택했고, 올림픽 헌장을 수정하여 1995년부터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나라는 ‘환경보호계획’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제도화하였다. 그리고 IOC는 유엔환경계획(the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 ,UNEP)와 긴밀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계, 동계 올림픽의 환경영향을 관리하는 역할을 UNEP가 맡고 있다. 이제 모든 올림픽 행사는 녹색 올림픽을 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저탄소 녹색 올림픽” 실행을 위해 자문위원단’를 구성하여, 환경보호계획을 제출하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평창위원회는 녹색올림픽 취지에 맞게 준비를 하고 있는가.
활강스키장 대안은 없는가
평창은 지역주민들이 생태계를 투쟁 속에서 보존해 온 곳이다. 가까운 예로 2004년 평창군이 철새도래지 인근에 레미콘 공장 신설을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공장은 주민이 반발하고, 이 지역이 야생동식물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던 터라 실제로 들어서진 못했다. 그러나 2008년 한전이 철새인 백로가 떠난 빈자리에 송전탑을 세웠다. 이 공사도 주민들은 트랙터로 공사를 저지했지만 그해 12월 거대한 송전탑이 완공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한 가리왕산 개발이 시작되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되었다. 경기장 사용 이후 복원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복원에 대해서 최문수 강원도지사 자신도 최근 환경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자원을 많이 투입하면 부드럽게 갈 수 있지만 비용이 없다”, “나무를 옮겨 심어도 잘 죽는다고 들었다. 이식할 땅도 없다. 처음부터 의사결정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국제기준에 따라 알파인 스키경기장이 표고차이가 800m가 나야하기 때문에 꼭 가리왕산에 새로운 스키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스키연맹(FIS) 규정에는 표고차 350~450m 슬로프에서 두 번 경기를 하고, 그 결과를 합산해서 순위를 매기는 ‘2 RUN’ 규정이 있다. 2RUN 규정을 도입하면 강원도 내 다른 기존의 스키장을 사용해도 된다고 환경단체는 해석한다. 그러나 FIS는 이 투런 레이스 규정이 올림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정부의 주장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도 구조물을 세워 활강경기를 치른 전례가 있다. 그러므로 용평리조트 등 다른 곳으로 경기장을 이전하여 구조물을 세워서 경기를 치를 방법 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3일 경기를 위해서 500년 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동의될 수 없다. 가리왕산도 지키고, 불필요한 예산낭비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럴 때 인천시민과 같은 빚 폭탄을 받을 평창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올림픽의 정신에도 부합한다.
‘지속가능성’이란 정신과 육체
가리왕산 중봉 활강스키장 건설 여부는 한국올림픽 추진위, 정부와의 일만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의 헌장을 지키는 주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올림픽의 헌장이 국제스키연맹(FIS)의 주장에 의해서 무시될 성격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이 올림픽 헌장을 통해 녹색을 지향하고 있지만 아직 현실은 어둡다. 국제스포츠 행사 자체가 대단히 상업적인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녹색을 현실화하는 것은 부단한 국제시민사회단체의 노력에 의해서 가능하다. 특히 한국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 경제가 개발성장주의를 근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이 경제 성장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있는 선상에서는 개발을 통한 성장은 지속화될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황폐한 불평등한 결과가 지금도 드러나고 있지만, 정부와 자본의 개발성장은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에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형 스포츠 대회 개최와 부동산 투기, 시설에 대한 과잉투자이다. 대형 스포츠 대회는 88서울올림픽에서 이제는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도시에 비해 낙후된 지역에 사는 지역의 주민들은 지역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 대규모 행사의 부풀린 경제효과에 현혹되기 쉽다. 그러나 각종 국제행사의 결과 남겨진 것은 바로 부동산 가격 상승, 지역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 그리고 지역에 늘어나는 소비적 풍토이다.
우리가 가리왕산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평창에서 논의되는 주제, 생물다양성보존 때문이다. 생물다양성은 우리 마을, 우리 사회, 우리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필요한 가치이며 올림픽의 주요한 가치여야 한다. 스포츠의 이름으로 우리의 중요한 생존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올림픽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는 바로 건강한 자연이 보존될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