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린재나무
5월과 6월의 봉화산에는 노린재나무, 팥배나무, 괴불나무, 말발도리 등 다양한 나무 꽃들이 핀다.
노린재나무는 1~3m남짓 자리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두면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그런 나무 중 하나다.
수술이 유독 긴 순백의 꽃과 햇빛을 받으면 나타나는 잎의 무늬가 예쁘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는 가을에 걸핏하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노린재'는
위험하다 싶으면 그리 유쾌하지 못한 노릿한 냄새를 내뿜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나무가 이 곤충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것 같은 '노린재'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 나무의 줄기나 단풍이 든 잎을 태운 재로 만든 잿물이 노랗기 때문(한자로 '황희)'이라고 한다.
이 노란 잿물, 즉 황희는 전통염색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매염제였다고 한다.
특히 보라색 염색을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매염제였으며,
제주도에서 자라는 섬노린재나무로 만든 잿물은 일본인들이 몹시 탐낸 나머지
제주도의 노린재나무를 별도로'탐라목'이라 이름붙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나.
노린재나무 잎에는 여러 가지 독 물질이 들어 있어 아무 곤충이나 맘 놓고 먹을 수 없습니다.
잘못 먹었다간 소화도 안 되고, 토하기도 하고, 목숨까지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기 뒤흰띠알락나방에게 이 독물질은 되레 입맛을 돋우는 식욕촉진제가 됩니다.
조상 대대로 노린재나무 잎을 먹다보니 치명적인 독 물질에 내성이 생긴 덕입니다.
게다가 이 독물질을 원료로 해 자신을 지키는 방어물질을 만드니
노린재나무의 독 물질은 아기 뒤흰띠알락나방에게 여러모로 생명줄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어른이고 아기고 뒤흰띠알락나방은 노린재나무가 풍기는 독 물질 냄새를 맡으면
홀린 듯이 이끌립니다.
노린재나무로 만든 잿물이 매염제로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비누의 원료인 수산화나트륨(NaOH)이 많이 들어 있어서 매염제 역할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린재나무는 왜 이런 성분들을 가지게 되었을까.
초식동물들에게 쓸데없이 뜯어 먹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노린재나무뿐일까. 모든 식물들은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한 고유한 물질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쉬운 예로 우리들이 봄에 먹는 두릅순의 독특한 향은 두릅나무가
노린재나무처럼 몸을 보호하고자 갖춘 방어물질 중 하나다.
그럼에도 우리가 두릅나무의 순을 좋아해 싹이 돋는 족족 뜯어 먹는 것처럼
도리어 그걸 이용해 살길을 찾는 곤충들이 꼭 있는 것이고.
곤충은 꽃잎에 반사되는 자외선을 보고 찾아옵니다.
곤충의 눈에 노린재나무 꽃잎은 바깥쪽보다 안쪽이 더 강렬한 색으로 보입니다.
강렬한 색 부분이 자외선이 반사되는 부분이고,
바로 '꽃 안내판(허니 가이드 혹은 유인색소라고도 함)'이지요.
노린재나무 꽃은 꿀 안내판을 꽃 한가운데 그려 놓고 곤충들에게 먹을 것이 있다고 광고를 합니다.
또한 꿀 안내판을 따라가면 수술들이 노란 꽃가루를 머리에 이고 있지요.
노란색도 모든 곤충이 잘 알아보는 색으로 여겨지고 있어 자외선과 더불어 꽃을 찾는데 한 몫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잎이 우거진 숲에 꽃이 달랑 한 송이만 피어있다면?
그것도 팥알만 한 작은 꽃이? 곤충의 눈에 띄기란 하늘의 별따기죠.
그래서 노린재나무는 꽃자루 하나에 꽃을 수십 송이 달아(원추꽃차례)
멀리서 보면 커다란 꽃이 피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 <나무와 곤충의 오랜 동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