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봉산행
옛 선비들은 가을바람이 불면 관직을 내던지고 귀향을 꿈꿨습니다.
그래서 가을바람(秋風)이란 시어는 귀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해석합니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은 ‘동강조어’란 시에서
“가을바람 일기를 기다릴 것 없이/
장한처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不待秋風起/願從張翰歸)”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입니다
춘천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명산이 많습니다
교통도 편리해서 수도권전철, 버스, 승용차, 자전거등
접근이 쉬운 탓으로 조용하던 산들이 시끄러워졌습니다
가을바람 따라 집을 나섭니다
오랫동안 산행을 멈춘탓으로 내공도 쌓을 겸
짧지만 힘든 코스를 생각해 냅니다
평소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급경사 험한 길로 들어섭니다
등산로 입구는 토목공사로 인해 막혀버리고
물봉선이 가득한 우회길로 들어섭니다
잣나무 숲이 하늘을 가립니다
오르는 길을 둘러싼 것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입니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면서 폐 깊숙이 스며듭니다
잣송이를 채취하느라 바닥이 온통 잣송이가 널려있습니다
향긋한 잣냄새가 숲속에 가득합니다
아, 그래, 가을이지.
갈지자로 굽이치는 이어진 길을 걷노라니
바람이 묵직한 구름을 멀리 밀어내고
밝은 햇살이 숲으로 쏟아집니다.
발밑에서는 흙이, 돌들이 밟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비집고 불어온 바람이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식혀줍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적어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 좋습니다.
한산하고 한적한 길을 걷는 맛은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숲이, 나무가, 꽃이, 구름이, 흙이, 돌이, 벌레가, 새가
시원한 바람이 되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등산로는 계속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미끄러워 더 힘이 듭니다.
오르막의 연속입니다. 쉬엄쉬엄 계속 전진입니다.
가까운 능선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검봉으로 향하는 주등로가 이어집니다
오랫동안 만나지못한 산친구들이 쉬고 있습니다
반가운 사람들.. 그간의 안부를 듣습니다
이젠 나이만큼이나 저를 알아보는 산친구들을 많아져
어딜가나 외롭지 않습니다.
本是山中人 愛說山中話 五月賣松風 人間恐無價(중략)
본시 산에 사는 산사람이라 산중 이야기를 즐겨 한다.
오월 솔바람을 팔려하나 사람들 값 모를까 걱정이라
검봉
산의 형상이 ‘칼을 세워둔 모양과 같다’고 해서
칼봉 또는 검봉이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어떤 지도엔 그냥 검봉이라 표기하고, 또 다른 곳엔 검봉산이라 적고 있습니다.
등산로 이정표에는 전부 검봉산으로 돼 있으며
국립 지리정보원에서는 ‘검봉’이라고 합니다.
하산길
최근에 산림청에서 등산로를 정비했습니다
급경사 내리막길 입니다
계속되는 계단길. 그리고 로프구간.
이제 공사가 막 끝난 시설물이
벌써 군데군데 망가지고 더 위험해졌습니다
능선은 숲길입니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한가롭지만
위험한 내리막을 조심하느라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가파른 산길이 끝나면 바로
구곡폭포 주차장
짧지만 힘든 길. 검봉의 또 다른 묘미입니다